프로축구 노장의 ‘삭발 협박’ 대전을 구하다

  • 동아일보

수문장 최은성, 후배들에 경고
포항 파상공세 막고 연패 탈출

두 선수가 뒤엉켰다. 주먹으로 한 대 칠 듯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프로축구 대전-포항의 경기가 열린 22일 대전월드컵경기장. 후반 15분 대전 김창훈과 포항 모따는 그라운드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양 팀 선수들이 서둘러 두 선수를 진정시켰다.

포항 황선홍 감독은 모따를 빼고 최근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조찬호를 투입했다. 정규리그 선두를 다투는 팀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였던 전반이었다. 조찬호의 투입은 분위기 쇄신을 위한 황 감독의 선택이었다. 조찬호는 곧바로 진가를 드러내며 미드필드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포항에 새바람을 넣었다. 후반 22분 조찬호의 날카로운 침투 패스를 받은 노병준은 대전의 백전노장 골키퍼 최은성과 마주했다. 양 팀 응원단이 일제히 일어서 긴장의 함성을 높였지만 공은 최은성의 선방에 걸리고 말았다. 이후 조찬호와 노병준은 잇달아 대전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최은성에게 막혔다.

이 경기를 앞두고 최은성은 후배들을 협박(?)했다. 팀 내 최고참으로 항상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는 그는 최근 정규리그 4연패를 당한 후배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팀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후배들의 머리를 깎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브라질 용병 박은호에게도 머리를 직접 밀어 보이는 시늉을 하며 뜻을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은성은 자신이 모범이 돼야 했고 이날 투혼을 발휘하며 팀의 무실점을 이끌어냈다. 0-0 무승부. 연패를 벗어난 대전은 비기고도 이긴 듯한 표정이었다. 포항은 올 시즌 처음으로 포백 수비를 들고 나오며 기존의 스리백에서 전술 변화를 준 것이 주효했다. 선두 탈환에 나섰던 포항은 6승 4무 1패. 포항은 전날 강원에 1-0 승리를 거두며 7승 1무 3패를 기록한 전북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대전은 3승 4무 4패로 12위.

대구는 전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최용수 감독 대행이 이끄는 서울을 맞아 2-0으로 일격을 가했다.

대전=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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