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레이스, 格이 달랐다

  • Array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승훈과 2위 바벤코 ‘5000m-1만m’ 비교해보니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겨울아시아경기 3관왕에 오른 이승훈(23·한국체대)의 레이스가 그랬다. 5일 스피드스케이팅 1만 m를 마친 이승훈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힘든 기색 없이 다음 조 경기가 열리는 동안 경기장을 돌며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20초 이상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을 딴 드미트리 바벤코(26·카자흐스탄)가 레이스를 마친 뒤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아시아에 적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이승훈의 명품 레이스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 한 차원 다른 체력

이승훈의 심폐지구력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에 비견된다. 쇼트트랙 선수 시절부터 체력이 남달랐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승훈의 체력은 압도적이었다. 5000m에선 400m 랩타임이 30초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바벤코의 400m 랩타임이 3800m부터 31초대로 올라간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의 강철 체력은 1만 m에서 더욱 돋보였다. 레이스 중반부터 400m 랩타임이 31초대 중반과 32초대 초반을 오갔다. 은메달리스트 바벤코는 32초대를 유지하다 8000m 이후에는 33초를 넘어섰다.

○ 작전의 승리

1만 m를 마치고 이승훈은 “첫 바퀴 기록이 좋아서 우승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상대 선수들을 압도하며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했다는 얘기다. 이승훈은 1만 m에서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30초대 랩타임을 끊으며 상대의 기를 죽였다. 김형범 대한빙상경기연맹 경기이사는 “막판에 랩타임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승훈이이기 때문에 막판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은 먼저 치고 나갈 수 있었지만 ‘3바퀴를 남길 때까지 체력을 최대한 비축한다’는 작전을 끝까지 지켰다.

○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노련미

자기 레이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지배하는 것도 비결 중 하나다. 1만 m에선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이 2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울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승훈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전광판을 확인해 자기 기록을 체크한 뒤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아스타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아! 0.03초…

이승훈, 팀추월서 日에 간발의 차로 金내줘 4관왕 물거품

아쉽지만 너무나 잘했다.

한국이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아경기 마지막 날 아쉽게 일본에 추월을 허용하며 종합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은 6일 4관왕에 도전한 이승훈이 남자 팀추월에서 은메달에 머물러 크로스컨트리에서 선전한 일본에 2위를 내줬다.

개최국 카자흐스탄이 예상대로 독주한 가운데 한국은 금 13개, 은 12개, 동메달 13개를 따내며 역대 최다 메달을 기록했다. 한국은 금 4개를 따낸 효자종목 쇼트트랙 외에도 스피드스케이팅(5개), 스키(4개) 등 전 종목에서 고르게 선전하며 겨울 스포츠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쇼트트랙에만 메달이 집중되지 않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따낸 점, 약세로 여겼던 스키에서 예상보다 많은 금메달을 따낸 것은 고무적이다.

김종욱 선수단장(한국체대 총장)은 “역대 최다 메달을 따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막판에 2위를 내줘 아쉽지만 스키를 비롯한 겨울 종목의 다변화를 이뤘고, 밴쿠버 이후를 대비할 신예들도 많이 발굴했다”고 평가했다.

5000m, 매스스타트, 1만 m를 연달아 제패하며 3관왕에 오른 이승훈은 한국의 겨울아시아경기 사상 첫 4관왕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승훈 이규혁 모태범 등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스타들이 총출동한 팀추월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3분49초18)에 0.03초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승훈은 “0.03초 뒤졌지만 그게 실력 차다”라며 패배를 인정한 뒤 “아직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해 모자란 점이 많다. 체력과 스피드를 더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2003년 아오모리와 2007년 창춘 대회 1000m와 1500m에서 연속 2관왕에 올랐던 이규혁도 노 골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여자 선수들은 팀추월에서 한국의 대회 마지막 금메달을 선사했다. 이주연 노선영 박도영이 출전한 여자팀은 3분4초35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일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냈던 노선영은 이날도 우승하며 동생 노진규(쇼트트랙)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남자 아이스하키도 풀리그 최종전에서 중국을 11-1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게임에서 약체 대만을 물리친 뒤 카자흐스탄(금), 일본(은)에 연패했던 한국은 중국을 이기고 2승 2패를 거둬 3위에 올랐다.

아스타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