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0|스타가 말하는 2010 그때 그 순간] 여민지 “U17 우승컵 번쩍…시골소녀 인생 180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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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7일 07시 00분


일본 꺾고 세계정상…평생 잊지못할 추억
축구일기 출간·CF 등 갑자기 부자된 기분
내년 고3…“성인대표서도 꼭 우승해야죠”

여민지. 스포츠동아DB.
여민지. 스포츠동아DB.
2010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 한국축구는 ‘풍년’이었다. 각종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아시아에서도 정상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스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0 그 때 그 순간’을 되돌아본다.

2010년 한국 여자축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특히 9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보여준 태극 소녀들의 퍼포먼스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중심에는 ‘작은 거인’ 여민지(17·함안대산고)가 있었다.

한국의 우승과 함께 대회 득점왕(8골)이 됐고, 대회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본인 표현대로 시골 소녀는 유명 인사가 됐다. “저처럼 한꺼번에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여전히 앳된 미소.

그는 지난 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시상식에 참석, AFC 올해의 여자 청소년상을 수상했고 내년 1월에는 FIFA 시상식에 초청돼 스위스로 건너갈 예정이다. 작지만 큰 소녀와의 만남을 풀어본다.

○여전히 짜릿한 기억

지금도 정상에 서서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든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상대가 한국 축구의 오랜 라이벌 일본이었기에 그 의미와 감격은 더했다.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 했다는 사실. 여자월드컵 직전, 수술 받은 무릎을 다시 다친 것은 전화위복이 됐다.

“그냥 짧은 시간이나마 뛸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어렵사리 뽑혔지만 대회 기간 내내 100% 컨디션이 아니었다. 당시 여자대표팀을 이끌었던 최덕주 감독은 “민지의 몸 상태가 80%만 됐어도 훨씬 강한 플레이를 보여줬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민지는 강했다.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4골을 넣는 등 8골을 작렬했다. 취재진 없이 썰렁했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은 돌아올 때 엄청난 환영 인파로 가득 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꼭 제 얘기였어요.”

스포츠동아가 단독 보도했던 여민지의 축구일기. 창원 명서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써 왔던 6권의 축구일기에는 여민지의 남다른 열정을 엿볼 수 있다.스포츠동아DB
스포츠동아가 단독 보도했던 여민지의 축구일기. 창원 명서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써 왔던 6권의 축구일기에는 여민지의 남다른 열정을 엿볼 수 있다.스포츠동아DB
여민지가 창원 명서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써왔다는 축구일기도 화제가 됐다. 대회 8강전이 끝난 뒤 스포츠동아가 단독 보도한 여민지의 축구일기에 모든 이가 관심을 보였다. 각 신문사들과 방송사들은 여민지의 축구일기 입수에 열을 올렸고, 잠시나마 분실 사태를 겪기도 했다.

“제 일기가 그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하루하루를 되돌아보고자 써왔을 뿐인데. 그래도 그런 관심은 싫지 않았어요.” 덕택에 출간도 했다. 내년 1월 초 여민지의 축구일기는 한 출판사에 의해 ‘성장과 꿈-일기가 나를 만들었어요’란 제목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초등학교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기에 유소년 선수들 사이에서 ‘축구일기 쓰기’ 붐이 일어날 것 같다.

그는 우유광고도 찍었고, 냉장고 CF모델도 됐다. 여자 스포츠스타 중 CF 광고를 찍은 이는 피겨 퀸 김연아 등 몇몇 외에는 없다. 수많은 시상식에도 단골손님으로 참석했다.

“주변 분들이 다들 응원 많이 했다고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죠. ‘아, 우리가 큰일을 해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박지성 오빠도 아닌데, 송구스럽기도 하고. 이제 앞으로가 더욱 중요한데. 부담도 크지만 행복이라고 하고 싶어요.”

● 전국체전, 그리고 재활

월드컵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주저 없이 나온 대답. “재활이요.” 그랬다. 항상 대외 활동에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그간 쉬면서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수술은 받지 않았지만 다행히 찢어졌던 근육도 이제 거의 아물었다고 한다. 월드컵 때에 비해 체중이 3kg 정도 불어났다는데, “살 쪘다”며 울상 짓는 모습이 영락없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전국체전도 잊을 수 없다. 여민지가 속한 함안대산고의 경기가 열린 날,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여자 축구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는 분들이 저를 응원해 주셨어요. 관심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국내 대회가 앞으로도 여러 번 있는데, 항상 똑같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리고 싶어요.”

여민지도 내년이면 고3 수험생이다. 벌써부터 여자 축구부가 있는 각 대학들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미래 계획은 세웠을까. “우선 성인으로서 제 인생의 첫 걸음이잖아요. 대학을 결정할 시기니까요. 제가 원하는 대학, 저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게 1차 목표에요. 이후 실업팀을 가든지, 해외 진출을 하든지 결정하려고요.”

하지만 여민지에 주어진 과제가 대학 진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 대표팀에 대한 꿈. 19세 이하 AFC 여자선수권 출전도 꿈꾼다. 2년 뒤 베트남에서 열릴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결코 놓칠 수 없다.

대회 결승전에 꼭 올라야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 1월 7일부터 열흘 간 이어질 전남 구례 전지훈련을 통해 몸만들기에 나설 계획이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야죠.”

마지막으로 한국 여자축구에 자신의 역할을 물어봤다. “그동안 여자 축구가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잖아요. 한국 스포츠계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해도요. 앞으로 (지)소연이 언니랑 함께 잘 해내고 싶어요.”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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