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인라인롤러 女EP 1만m 우승 우효숙, 시상대서 계속 눈물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금메달 약속 지켰는데 할머니는 돌아가셨다니…”

《인라인스케이트의 ‘장거리 여왕’ 우효숙(24·청주시청)은 아픔이 많다. 주니어 시절에는 동갑내기 궉채이와 라이벌이었지만 희귀 성(姓)과 깜찍한 외모의 궉채이가 인기를 독차지했다. 기복이 심했던 궉채이와 달리 올해로 9년째 태극마크를 달 만큼 꾸준했던 우효숙은 2008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세계선수권 3관왕, 아시아선수권 5관왕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한때 동호인 인구만 400만 명에 이르던 국내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급격히 꺼지면서 과거 궉채이가 누렸던 인기를 그는 결코 누리지 못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는 그런 그에게 일종의 한풀이 대회였다. 인라인롤러가 아시아경기 정식종목으로 처음 편입되면서 종목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 24일 광저우 벨로드롬에서 열린 인라인롤러 여자 EP 1만 m 결선에서 31점을 획득해 20점의 중국 궈단을 큰 점수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직후 그의 눈물샘이 터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EP 1만 m는 트랙을 50바퀴 돌면서 매 두 바퀴마다 순위에 따라 점수를 주고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이기는 종목. 우효숙은 이 종목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첫 3연패를 하는 등 독보적이다.

우효숙은 경기 직후 취재진 앞에서 스포츠 고글을 한참 동안 벗지 못할 만큼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도 많이 우승해 봤지만 오늘처럼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건 처음이다. 그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우효숙에겐 한풀이의 눈물 뒤 또 하나의 큰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를 끝낸 직후 “병원에 입원 중인 할머니께 빨리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 할머니(이정순 씨)는 사실 19일 돌아가셨다. 강대식 대표팀 감독이 우효숙의 부모와 상의한 끝에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사를 하는 부모가 자주 집을 비워 거의 할머니 손에 컸던 우효숙에게 할머니는 부모 같은 존재였다. 뒤늦게 감독에게 사실을 전해 들은 우효숙은 시상식 내내 눈물을 쏟았다. 2, 3위를 차지한 궈단과 대만 팡이친은 영문도 모른 채 우효숙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는 “할머니께서 예전에는 휠체어를 타시면서도 경기장을 찾곤 하셨는데 최근엔 건강이 나빠져 제 얼굴도 못 알아보셔 너무 속상했다. 출국하기 직전 병원에서 할머니께 ‘금메달 목에 걸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렸는데…”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