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사이클-癌도 막지 못한 효심… 그녀, 홀어머니 위해 달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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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km를 49분38초357 만에 달렸다. 2분 간격으로 한 명씩 출발해 기록으로 순위를 가리는 경기. 출전 선수 가운데 맨 마지막이었기에 메달 색깔은 온전히 그의 발에 달려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이클을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레이스였다. 안장에서 내려왔을 때는 설 힘조차 없었다. 도로 위에 누워버렸다. 몸은 꼼짝도 못하겠는데 눈물만 흘렀다. 20일 사이클 여자 도로독주에서 우승한 이민혜(25·서울시청)의 머릿속에 지독히 불운했던 2008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21일 광저우 아시아경기 선수촌 앞에서 그를 만났다.》

“금빛 염색하고 금메달 땄죠” 이민혜는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머리를 금빛으로 염색했다.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일 여자 도로독주에서 우승한 이민혜가 금-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19일 개인추발에서 2위를 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금빛 염색하고 금메달 땄죠” 이민혜는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머리를 금빛으로 염색했다.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일 여자 도로독주에서 우승한 이민혜가 금-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19일 개인추발에서 2위를 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사이클 도로독주 금메달 이민혜의 눈물과 환희

○ 자신도 몰랐던 갑상샘암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았다. 체중은 늘었고 빼기 쉽지 않았다. 필요하면 한 달 동안 10kg을 무리 없이 감량했던 그였다. 자주 피곤해지고 회복은 더뎠다. 성격도 변했다. 짜증이 늘고 별 것 아닌 일에 울컥했다. ‘나이 먹으면 몸이 다르다’는 선배들의 얘기를 떠올리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암 세포 탓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민혜의 어머니 최강희 씨(51)는 그런 딸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갑상샘 기능저하증을 앓았기에 그 증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딸의 손을 붙잡고 병원을 찾았다. 얼마 뒤 최 씨는 딸이 갑상샘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당시 이민혜는 한국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베이징 올림픽 트랙 경기 출전권을 땄다. 포인트레이스에 참가해 기대를 모았지만 22명 가운데 19위에 그쳤다.

“네 목에 혹이 있어 떼어내야 한대.”

서울에 돌아온 딸에게 엄마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딸은 “그러죠,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몸은 점점 힘들었고 감정 조절도 어려웠다. 10월 전국체육대회를 마친 뒤 소속 팀 김석호 감독에게 “사이클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만류로 일단 쉬기로 한 이민혜는 목에 있는 혹 2개를 잘라 낸 뒤 8개월 동안 페달을 밟지 않았다. 그는 “참 이상하죠? 사이클은 안 탔지만 꾸준히 운동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 엄마, 그가 페달을 밟는 이유

자신도 몰랐던 암 세포 탓에 포기를 선언했지만 이민혜는 사이클을 그만둘 수 없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사이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이민혜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세 살 위 언니와 엄마가 남았다. 이민혜의 큰아버지는 엄마에게 “동생의 두 딸은 우리가 키울 테니 다른 사람 만나라”고 권했지만 엄마는 딸을 놓지 않았다. 고된 골프장 캐디를 하며 살림을 꾸렸다. 나이 들어 캐디를 그만둔 뒤에는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낮에 식당에서 일했다.

서울 대조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던 이민혜는 6학년 때 사이클로 종목을 바꿨다. 이민혜의 형편을 잘 알고 있던 육상부 지도교사가 사이클을 하면 프로 경륜 선수가 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육상 유망주였던 제자를 설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경륜은 없지만 은사의 착각 덕에 이민혜는 사이클 선수가 됐다.

“엄마가요, 지금은 형편이 어렵지 않은 데도 계속 일을 하세요. 일만 하신 분이라 쉬면 몸이 더 아프대요.”

엄마 얘기를 꺼내자 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최 씨는 지난해 두 차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평생 혹사당한 몸이 기어코 앙갚음을 했다. 그 몸으로 최 씨는 요즘도 새벽마다 무료 신문을 배포한다. 이민혜는 이번 대회에서 금 1개, 은메달 1개를 따 연금 포인트를 채웠다. 앞으로 매달 30만 원을 받는다.

“남자 선수는 병역 혜택을 위해 열심히 하잖아요. 저는 연금 생각을 하며 달렸어요. 받은 상금을 드려도 저축하는 우리 엄마, 그 돈으로 용돈 쓰시게 할 거예요.”

서울에 있는 최 씨와 통화를 했다. 딸 얘기를 꺼내니 엄마가 운다.

“힘들게 운동하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 늘 미안해요. 그런데도 잘 자랐어요. 평소 표현을 잘 못하는데…. 사랑한다. 우리 딸.”

이민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옴니엄 종목에서 메달을 자신했다. 2007년부터 스위스에 있는 국제사이클연맹센터에서 전지훈련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원 없이 훈련할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금메달도 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고환암을 극복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보다 제가 정신력은 더 강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엄마 목에 꼭 올림픽 금메달을 걸어 드릴 거예요.”

한편 20일 이민혜에 앞서 남자 도로독주에 출전한 최형민(20·금산군청)은 애초 이 종목 대표였던 선배가 다치는 바람에 ‘대타’로 나온 첫 아시아경기에서 깜짝 금메달을 땄다.

광저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동영상=˝저의 금메달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사이클 이민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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