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니어선수권 2관왕 이혜진…올림픽 사이클 첫 메달 보인다

  • Array
  • 입력 2010년 9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바람을 앞지르고픈 18세 소녀

약 3개월에 걸친 스위스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해 대전벨로드롬에서 훈련 중인 이혜진은 내달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다.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약 3개월에 걸친 스위스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해 대전벨로드롬에서 훈련 중인 이혜진은 내달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다.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바람은 제 길을 간다. 바람에 맞서거나 바람을 등에 업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처음에는 그저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다. 페달을 밟은 지 7년째. 이제 맞바람은 피하고 싶어졌다. 바람보다 빨리 달려, 바람이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좋다. 당찬 18세 소녀는 자신의 두 다리로 바람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혜진(연천군청)은 지난달 12일 이탈리아 몬티키아리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사이클선수권 500m 독주에서 35초47로 우승했다. 15일 열린 올림픽 정식 종목 스프린트(200m) 결승에서도 11초291을 끊으며 러시아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한국 사이클은 2004년 주니어대회에서 강동진(울산시청)의 은메달에 이어 시니어로는 조호성(서울시청)이 1999년 3위에 올랐지만 시니어와 주니어를 통틀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것은 이혜진이 처음이다. 게다가 두 종목 모두 한국 신기록이었다.

“스위스에 있는 세계사이클연맹(UCI) 센터에서 훈련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무엇보다 트랙 여건 등 훈련 환경이 국내와 달랐어요.”

이혜진은 대한사이클연맹이 추진하는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7월 초 스위스로 갔다. 미국 대표팀 출신의 앤디 스팍스 코치에게 맞춤형 훈련을 받았다. 스팍스 코치는 “지금까지 만난 선수 가운데 운동 능력이 가장 우수하다. 탄력과 회전 능력을 타고났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혜진은 이탈리아 대회가 끝난 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훈련을 계속했고 21일 귀국했다.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도 못한 채 공항에서 곧장 소속 팀이 훈련하고 있는 대전으로 왔다. 그는 내달 초 개막하는 경남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다.

“전국체육대회 일반부는 첫 출전이에요. 지난해까지는 고등부에 나갔고요. 쟁쟁한 언니들과 실력을 겨룬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네요.”

그러나 연천군청 정한종 감독은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첫 성인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은 태평중 1학년 때 사이클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체력장 기록이 탁월한 것을 본 체육교사가 권유했다. 중 2때인 2005년 소년체육대회에 처음 나가 동메달 3개를 목에 걸었고 이후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위험하다’며 운동을 반대했죠.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었어요. 지는 게 싫어 더 열심히 했어요. 나중에 제가 힘들어 그만두겠다고 하니 그때는 주위에서 계속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이클은 여성이 하기에 쉽지 않은 운동이다. 페달을 밟을수록 허벅지와 종아리가 굵어진다. 스포츠 유망주들이 사이클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닌데 바지가 시간이 지나면 맞지 않아요. 다리가 두꺼워져서죠. 사실 운동한 걸 후회한 적도 많아요.”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은 “또래 여자들이 화장할 때 송진가루를 묻혀야 했고, 다이어트할 때 야식을 먹어야 했다”며 고충을 얘기했다. 후회했다는 게 그런 의미였는지 물었다.

“또래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가끔 아쉬웠어요. 한껏 게을러지고 싶을 때 그럴 수 있는 대학생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고요.”

이혜진도 수원대에 적을 두고 있긴 하다. 소속 팀 연천군청에서 선수들의 대학 진학을 지원해 준다. 그러나 추석도 없이 트랙을 달리는 그에게 캠퍼스 생활은 남의 나라 얘기다.

“앞으로는 사이클 시작한 것을 후회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뒤 주변에서 기대도 많이 하시잖아요. 이제는 무조건 해야죠.”

한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사이클에 참가했지만 아직 동메달 한 개도 얻지 못했다. 이혜진은 2012년 다시 런던 올림픽에 도전하는 한국 사이클의 희망이다.

당찬 18세 소녀는 자신의 두 다리로 사이클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이혜진은 누구?

생년월일: 1992년 1월 23일
소속: 연천군청
체격: 164cm, 58kg
출신교: 성남 수진초-성남 태평중-연천고
사이클 입문: 중학교 1학년 때
주 종목: 스프린트(200m)
가족: 아버지 이후천 씨(44)와 어머니 이은영 씨(43)의 1남 1녀 중 맏이
취미: 음악 감상
좋아하는 연예인: 천정명(착하고 순하게 생겨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