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첫 원정 16강 쏘던 날의 경기장 풍경

  • Array
  • 입력 2010년 6월 24일 07시 00분


코멘트
정성룡 골키퍼. [스포츠동아 DB]
정성룡 골키퍼. [스포츠동아 DB]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리는 순간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그라운드 안의 태극전사들이 한데 뒤엉켰다. 지금까지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던 원정 월드컵 16강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정성룡 득남 추카추카” 깜짝 선물

●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


수문장 정성룡(성남)은 기쁨이 두 배였다.

16강 진출과 함께 18일 아내 임미정 씨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리머니를 선물 받았다. 전반 38분 이정수가 기성용의 프리킥을 받아 동점골을 터뜨리자 선수들은 하프라인 근처로 모이더니 정성룡이 서 있는 골문을 향해 나란히 섰다. 선수들이 보여준 것은 양팔을 앞으로 내밀어 좌·우로 흔드는 ‘아이 어르기’세리머니. 어디선가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사우디 원정에서 외손자를 얻은 허정무 감독을 위해 같은 세리모니가 나온 적이 있었다.

정성룡은 “아들이 정말 복덩이인 것 같다. 세리머니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싸나이’ 울린 16강…정해성코치 눈물

● 천하의 정해성 수석코치가 눈물을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정해성 수석코치가 눈물을 흘렸다.

경기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빠져 나가는 정 코치의 눈은 붉게 충혈 돼 있었다. 취재진의 축하인사에 포옹, 악수로 화답하던 그는 “우신 것 아니냐”고 묻자 쑥스러운지 손을 내저으며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정 수석코치는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을 잠시 빌리자면 대표팀의 ‘진남(진짜남자)’이다. 소신 있는 의리파에 평소 성격도 괄괄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16강 확정 순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으로 그 감동을 이미 한 차례 경험했건만 그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박태하 코치는 “코칭스태프들도 다 울었죠”라며 당시 상황을 귀띔해줬다.

김남일·차두리 지옥→천당 ‘기쁨 두배’

● 감격 두 배 김남일, 차두리


선수들이 본부석 맞은 편 관중석으로 모두 달려가 어깨동무를 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벤치 앞에서 쓸쓸히 음료수를 들이키던 이가 있었다. 바로 후반 교체 투입된 김남일(톰 톰스크).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로 내준 페널티킥 때문에 대표팀은 이날 천당과 지옥을 오고갔다. 그가 다른 동료들처럼 맘껏 웃을 수 없는 이유기도 했다. 그 때 박태하 코치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 잊어라. 오늘은 좋은 날이다. 누구나 실수할 때도 있다.” 허정무 감독 역시 “괜찮다 이 녀석아”라며 어깨를 툭 쳐 줬다. 김남일은 “오늘 특히 힘들었다. 반칙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 주영이가 ‘형 괜찮아요’라고 해준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끝나고 나서 정말로 울 뻔했다. 끝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고 충격을 회고했다.

차두리 역시 누구보다 감격에 겨운 모습. 차두리는 전반 뒤에서 들어오는 우체를 막지 못해 선제골을 허용했다. 1차적으로 오른쪽에서 완벽하게 크로스를 허용한 측면 수비에 문제가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골을 내준 장면을 지켜봤기에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실수 아닌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90분 내내 종횡무진 뛰어다닌 차두리는 경기 후 웃통을 벗은 채 그라운드를 활보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의리파 박주영, 경기후 팀동료 위로

● 하루나 챙긴 박주영


박주영은 AS모나코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팀 동료 하루나를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경기 전에도 그라운드에서 들어서기 전 하루나와 포옹을 하며 선전을 다짐했던 그는 나이지리아의 16강이 좌절되자 하루나에게 다가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풀어주려 애 쓰는 모습을 보였다.

더반(남아공)|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