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은 20일 문학구장 필드에 나와 있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직접 배팅볼을 올려주고 있었다. 바로 하루 전만 해도 “감독실 안에만 있었다”고 했던 그였다. SK에 이상징후가 느껴지면 늘 그런 김 감독이다. 하루 전 SK는 넥센에 1안타밖에 치지 못했다. 반면 19안타 16실점을 했다.
김 감독이 배팅박스 뒤에 꼿꼿이 버티고 서 있자 가뜩이나 진지한 SK 훈련장은 엄숙함마저 감돌았다. 전날까지 화두였던 김광현-류현진 맞대결 이야기는 꺼낼 계제가 아니었다.
19일 참패 직후엔 일체 추가훈련 없이 귀가했다. 투수조의 베테랑 가득염이 “어쨌든 1패”라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박정권은 “그런 날은 충격 먹고 끝내야지 특타 쳐봤자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20일엔 주장 김재현이 “즐기면서 하자”고 다시 한번 선수들의 정신 재무장을 강조했다.
뜻밖의 대승을 거둔 넥센 선수단도 겉으론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란 뿌듯함과 무언의 자신감이 배어나왔다. 특히 깜짝 선발승을 거둔 고원준은 취재 공세가 밀려들었다. MBC-ESPN 이순철 해설위원은 고원준을 두고 “어제 던진 것만 보면 김광현, 류현진에 필적할 만하다. 완급조절과 제구력이 프로 2년차 신인 같지 않다”고 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도 “어제 커브는 전성기의 이대진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넥센은 “고원준은 사실 2군에서도 노히트노런급 피칭을 수차례 했었다”라며 준비된 이변이라고 들려줬다. 어느덧 순위와 관계없이 신(新)천적관계로 떠오른 양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