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의 멀리건] 골프 해방구 피닉스오픈 16번 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3월 2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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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대회에는 진행요원이 많다.

선수의 플레이 때 갤러리들의 소음을 막으며 Quiet라는 팻말을 들고 정숙을 요청하는 진행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PGA 투어에서는 갤러리의 핸드폰 소리가 울릴 경우 바로 빼앗고 입구에서부터 소지품 검사를 한다.

허가받은 사진기자가 아니면 사진촬영은 금지다.

하지만 이런 제약들이 허락되는 갤러리들의 해방구가 있다.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의 TPC코스 16번홀(162야드)이다. 야외경기장의 스타디움 형식으로 돼 있는 이 홀은 티 박스에서 보면 새 둥지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Bird’s Nest로 부른다. 16번홀의 열기는 미국 최고 스포츠 풋볼게임을 방불케 한다. 술과 함성, 야유, 응원이 뒤섞인 곳이다.

골프 관전은 뒷전이고 젊은이들의 음주파티가 벌어진다. 특히 대회 때마다 애리조나 주립대 학생들이 대거 몰려 분위기 띄우기에 앞장선다.

기자도 지난 주 피닉스오픈을 상징하는 16번홀 새둥지를 찾았다. 이곳은 정숙을 요하는 전형적인 골프 코스가 아니었다. 갤러리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그린에서 선수들이 퍼트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 게 장터 같았다. 동시에 2만여 명 정도 수용되는데 절반 이상은 술 마신 갤러리들로 보였다. 피닉스오픈에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갤러리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티 박스 부근의 스탠드에서는 갤러리들이 한 대학생에게 단숨에 맥주를 마시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대회 둘째 날 카멜로 비제가스의 티샷이 그린 옆 웨지에 떨어지자 갤러리들은 일제히 우~ 하며 야유를 보냈다. 첫날 선두였던 비제가스가 퍼트의 라이를 읽으면서 특유의 스파이더맨 자세를 취하자 갤러리들의 반응은 함성과 응원으로 돌변했다. 비제가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홀은 8번 아이언 샷으로 올리는 매우 평범한 홀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편승되는 홀이다”고 선수들은 지적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로 버디행진을 벌였던 양용은도 2m 정도 홀에 가까이 붙여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때까지 단독 선두였던 양용은은 갤러리들의 성원에 손을 들어 답례하는 여유를 보였다. 사실 양용은이 17번홀에서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빠트리며 보기를 한데는 16번홀의 고조된 분위기 탓도 있었다.

경기 후 “너무 서둘렀다”고 양용은이 털어놓은 데서 드러난다.

스코츠데일의 TPC는 이른바 데저트 코스로 갤러리들이 게임 관전이 불편하다. 페어웨이 옆 접근이 어렵다. 이런 환경적인 요소 탓에 16번홀과 같은 스타디움 형태로 조성한 듯했다.

이 것이 새로운 골프 관전문화를 조상하는데 앞장선 셈이다.

현재 피닉스오픈 16번홀의 영향을 받아 다른 골프장들도 스탠드가 마련된 홀에서는 갤러리들의 성원 함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벌어진 노던트러스트 파3홀에서도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야유와 응원이 뒤섞여 있었다. PGA투어의 골프 트렌드도 신세대형으로 바뀌고 있다.

스코츠데일(미 애리조나 주)|문상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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