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안먹고 넣으면 이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일 1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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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대학 농구팀 감독이 작전 지시 때 선수들에게 한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날 라이벌 팀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이 대학 팀의 감독은 상대 팀이 한 골 차로 경기를 역전시키자 작전 타임을 불러 선수들을 모은 뒤 이렇게 말했다.

"자,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앞으로 (골을) 안 먹고, 우리가 (골을) 넣으면 이기는 거다."

"안 먹고, 넣으면 이긴다…."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으면 이런 작전 지시를 내렸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이 말에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것은 수비의 중요성이다. 승패나 순위를 가리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팀 스포츠에서 안정된 수비력은 승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

그가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염려했던 부분도 수비력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어록을 살펴보면 수비진 보강에 늘 신경을 쓴 게 여실히 드러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은 지 두 달 만에 "수비수들의 경기에 대한 컨트롤과 자제력을 더 발전시켜야 된다"고 말했다.

2001년 11월 10일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한국이 2-0으로 승리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수비는 아직 아이스하키처럼 차내기에 급급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2002년 4월 21일 코스타리카와의 경기 후에는 "수비 조직력이 아직 멀었다. 선수들의 개인 방어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수비에 대한 그의 지적이 사라진 것은 2002년 6월 14일 포르투갈을 꺾고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이후였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3개월 여 앞둔 한국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 그의 최대 고민도 불안정한 수비진에 있다.

지난달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중국에 0-3으로 완패한 뒤에도 허 감독은 "이런 저런 선수들을 다 테스트 해봤기 때문에 수비수들은 현재 대표 선수들 중에서 주전을 확정해 월드컵에 출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축구대표팀은 3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간) 영국 런던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부아르와 평가전을 갖는다.

이번 경기의 초점 역시 한국의 수비진이 막강의 코트디부아르 공격진을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맞춰질 전망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디에 드로그바를 축으로 살로몬 칼루(첼시), 아루나 딘단(포츠머스), 바카리 코네(마르세유) 등이 포진한 코트디부아르 공격진의 폭발력은 세계 최강 급.

한국은 이영표(알 힐랄)와 오범석(울산), 조용형(제주), 이정수(가시마), 차두리(프라이부르크)가 수비진을 이루고 있다.

런던 도착 후 첫 훈련에서도 수비수들만 따로 모아놓고 한동안 이야기를 한 허정무 감독은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개인기와 2선 침투 능력에 어떻게 대비할지 전략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강 공격진을 상대하게 된 한국축구 대표 수비수들.

물론 수비 전술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들이 한 가지 분명히 머릿속에 새겨야 하는 것은 '(골을) 안 먹어야 된다'는 단순 명쾌한 승리의 비결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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