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가을이야기] “반갑다 인천…이겨라 광주!” 최태원 코치의 특별한 가을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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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9일. 최태원(39·KIA·사진) 코치는 눈물부터 쏟았습니다. 체면을 차릴 새도 없었습니다. 김성근 감독부터 선수단 막내까지, 아는 얼굴만 보이면 무조건 얼싸안았습니다. SK가 창단 8년 만에 처음 우승하던 그 날 하루만큼은, ‘철인’ 최태원으로 돌아가 옛 기억에 젖었습니다. 인천 하늘을 수놓은 우승 축포 아래서 마음껏 목 놓아 울었습니다.

마냥 행복하기만 해서는 아닙니다. 그 때 그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내내, 남몰래 복잡한 심정을 달래면서 말입니다. 2000년 SK의 초대 주장, 8년을 한결같이 인천을 지켜온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최 코치는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추억을 안고 광주로 향합니다.

문학구장 내야 관중석 상단에는 여전히 ‘1014’라는 숫자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름도 사진도 보이지 않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SK가 그 숫자판을 떼어낼 수 없는지를. 두산과 SK의 플레이오프를 TV로 유심히 지켜보는 동안, 최 코치 역시 그 숫자 네 개가 유독 눈에 박히더랍니다. “1014경기 연속 출장….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죠. 유니폼을 입고 1000경기 넘게 매일 그라운드를 지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영광과 상처가 내 가슴에 남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더 의외였을 겁니다. 그 ‘최태원’이 KIA 유니폼을 입게 됐다는 게, 그것도 코치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직후에 인천을 떠난다는 게 말입니다. 안 그래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말렸답니다. 어쩌면 그에게도 생애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봐야겠다”는 각오가 등을 떠밀었습니다. SK가 아닌 KIA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문학이 아닌 광주구장의 3루 곁을 지키게 됐습니다. SK의 ‘혼’이었던 그는 이제 KIA의 ‘메신저’로 변신했습니다. 최고참 이종범과 동갑인 젊은 코치로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가교 노릇을 하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습니다. 상대는 정든 친정팀 식구들이고요. “같이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들, 그리고 코치로 함께 했던 제자들과 한국 최고의 무대에서 겨룬다는 게 정말 뿌듯하고 기쁘고 영광스럽네요.” 누구보다 특별한 최 코치의 가을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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