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벤치스토리] 꼴등 배장호 “내일은 롯데의 주연”

  • 입력 2009년 8월 29일 08시 29분


#‘8일 동안 팀이 신나게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나는 불펜에서 한번도 몸을 풀어보지 못했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느꼈어. 1군 엔트리 12명의 투수 중에 12등 투수라는 걸. 아무 것도 못해보고 또다시 음지로 가겠구나 하는 원치 않는 불안감과 복잡함.

너무나 싫어서 잠시 덕아웃을 벗어나서 넓은 시야로 그 모습을 지켜봤어. 나란 선수 하나 없어도 경기는 진행되고 있고 선수들 개개인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는 듯 보였어. 내 모습과는 반대이기에 부러웠어.

(중략) 9일째 만에 기회가 왔어. 물론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야. 깔끔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이닝까지 책임졌어. 더 이상의 실점이 없었기에 나로써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도, 미비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서 팀에게 도움을 줬다고.’

# 7월5일 새벽 2시. 롯데 배장호(22·사진)가 자신의 미니홈피 일기장에 남긴 글의 일부다. 1군에서 ‘개점휴업’ 상태로 지낸 안타까움, 그리고 1·2군을 오가며 느낀 자괴감.

남들은 ‘선택받은 자’라고 부러워하는 1군 선수들이지만, 그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배장호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로 시간이 계속 흘러가니까 걱정이 앞섰다. 자꾸만 약해지는 것 같아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스스로를 위한 글을 썼다”고 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시즌. 하지만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다.

스스로 “야구를 시작한 후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말할 만큼. 그저 코치들에게 야구를 질문하고 주변 동료들에게 인생을 물으면서 버텨내고 있다.

“새로운 목표와 마주할 수 있는” 다음 겨울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어떻게 운동을 해서 어떻게 자리를 잡겠다는 구상을 해보고 있어요.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그저 팀을 위해 나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뿐.” 그리고 그는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눈에 띄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그의 일기 한 토막.

#‘송승준 형처럼 마음껏 포효하지 못해도, 여러 사람들에게 환호 받지 못해도, 수고했다는 한 마디 듣지 못하더라도, 롯데 자이언츠의 일원이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뿌듯해. 그리고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어.

그러니까 상심하지 마. 흔들리지 마. 그거면 돼. 야구하는 동안 12등 투수만 하다 끝날 건 아니잖아. 1등 투수가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 더 이상 야구를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때 가서 울어. 지금은 아니야. 잊지 마. 왜 하고 있는지. 왜 해야 하는 건지. 왜 꼭 해내야 하는 건지.’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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