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한국 프로팀의 감독을 간절하게 원했던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면서 조금은 미안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 말하지만 2002년 이후 그는 한국에 남기를 정말 원했었다. 정확한 시기는 생각 나지 않지만 당시 감독 경질설이 나돌던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명하면서 내게 소개를 부탁했는데,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A4 용지 3페이지에 걸쳐 정성스레 작성한 이력서는 그가 다방면에 걸친 이론가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LA 갤럭시 코치를 제외하고는 축구지도 경력이 일천해 내 스스로가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외국지도자에 유독 폐쇄적이던 당시 프로축구 분위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똥차’ 소리를 들으면서도 육순, 칠순이 넘도록 감독 자리를 차고앉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그런 분위기 탓에 헛물을 켠 사람은 또 있다. 최근 한국보다 먼저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낸 핌 베어벡 호주대표팀 감독이 바로 그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히딩크 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히딩크의 제자’로 분류되기를 거부한 사람인데(동급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그래선지 K리그 사령탑 역시 FC서울과 수원 삼성만 노렸다. 당시 FC서울은 막 서울입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후보로 거론되다가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 FC의 초대 사령탑이 외국인이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배제된 것으로 안다.
핌 베어벡이나 압신 고트비로선 한때 자신들이 K리그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능력을 몰라주고 문을 닫아버린 K리그에 대한 ‘유감’ 보다는 지도자로서 이미 명장의 반열에 오른 화려한 이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로선 그들이 꿈꾸던 대로 K리그 사령탑을 거쳤다면 한국축구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열병과도 같았던 2002년을 보내면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말했었다. ‘중요한 것은 2002년의 재산을 소중히 간직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지는 몰라도, 관자놀이가 희끗희끗하게 변한 고트비 감독의 원숙한 모습을 대하면서 기둥뿌리 하나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중견 에이전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