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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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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이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텐트를 세차게 때렸다. 밖은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 손목시계는 20일 0시 40분(한국 시간 오전 3시 55분)을 가리켰다. 해발 8400m의 에베레스트 서릉 위. 죽음과 같은 적막감이 몸을 무겁게 짓누른다.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의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전날 아침 캠프4(7800m)를 출발한 그는 8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캠프5에 올랐다. 나흘에 걸쳐 2000m가 넘는 수직벽인 남서벽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달 파열됐던 왼쪽 종아리 근육은 여전히 끊어질 듯 아팠다.
휴식은 짧았다. 차와 비스킷으로 허기를 달래고 3시간여 쪽잠을 잤다. 허기도 추위도 호흡곤란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터. 정상 공격을 미룰 수는 없었다. 박 대장과 진재창 부대장(43), 신동민(35), 강기석 대원(31)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발을 등산화에 밀어 넣었다. 산소통을 맨 배낭이 묵직하다. 텐트를 나서자 달빛에 비친 히말라야 설산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원정대는 발길을 재촉했다. 캠프5에서 정상(8850m)까지 표고 차는 약 450m. 하지만 실제 올라가야 할 거리는 1.5km가 넘는다. 박 대장의 입술은 타들어갔다.
전날 신 대원이 250m 루트 작업을 끝낸 길을 따라 올라가며 속도를 냈다. 150m 줄을 더 깔아 400m를 전진했다. 헤드랜턴의 한 줄기 빛에 의지한 암흑 속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서릉은 쉽지 않았다. 해발 8600m. 서릉 루트의 난코스인 70m 높이의 첫 번째 스텝(절벽)이 원정대를 가로막았다. 70도가 넘는 기울기. 낙석마저 줄을 이었다. 박 대장은 오전 3시 49분 고심 끝에 완만한 우회로를 택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돌아가는 길이었다. 원정대는 오전 8시 18분 서릉의 최대 난코스를 넘어섰다. 첫 번째 스텝에 올라선 것이다. 박 대장은 베이스캠프로 무전을 날렸다.
“첫 번째, 첫 번째 스텝을 방금 올라섰다. 멀리 정상이 보인다.” 숨이 금방 넘어갈 듯했지만 기쁜 기색을 숨길 수는 없었다. 히말라야의 강렬한 태양이 대원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찌는 듯한 무더위로 변했다. 하얀 설원에 반사된 복사열 때문에 뜨거운 난로 위에 선 듯하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때 신동민 대원이 ‘괴력’을 발휘했다. 선봉에 선 그는 성큼성큼 정상 능선 바로 아래 두 번째 스텝으로 올라섰다. 50m가량의 절벽에 줄을 깐 그는 무전을 보냈다. “두 번째 스텝에 줄을 깔았습니다.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오전 10시 14분. 서릉의 두 번째 고비마저 넘었다는 낭보에 초조하게 등정 소식을 기다리던 베이스캠프에서는 다시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대원들이 가파른 절벽에 깔기 위해 가져왔던 700m 길이의 로프는 거의 소진된 상태. 잡고 올라갈 줄이 없어 대원들은 한 걸음만 헛디뎌도 수천 m의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대원들은 각자의 몸을 줄로 연결했다. 서로의 생명을 줄 하나에 의지한 채 한발 한발 내디뎠다.
정상에 함께 오른 박 대장과 진 부대장, 신 대원, 강 대원의 감정은 북받쳤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남서벽에 이어 서릉까지 딛고 올라선 산 사나이들은 어린아이들처럼 흐느꼈다. 잡음이 심한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박 대장의 음성은 웃는 듯 우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원들은 35분간 정상에 머물며 사진 촬영 등을 한 뒤 오후 3시 35분 남동릉을 통해 하산 길에 나섰다. 1991년 처음 남서벽 도전에 나선 후 18년 만에 꿈을 이룬 박 대장에게 정상에 선 30분 남짓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 박영석, 남서벽과 18년 질긴 인연
“먼저 간 네 후배와 약속 이제야 지켰습니다”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및 7대륙 최고봉 완등, 3극점 도달)을 달성한 그는 의기앙양하게 다시 남서벽 앞에 섰다. 그랜드슬램 달성 때문에 미뤄뒀던 ‘숙제’를 마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박 대장은 2007년에도, 지난해에도 남서벽을 오르는 데 실패했다. 실패보다는 성공에 익숙하던 그가 남서벽에서 네 번 연속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박 대장은 남서벽에 대해 단순한 실패의 감정을 넘은 진한 아픔을 갖고 있다. 함께 오르려고 했던 후배 4명을 남서벽에 묻었기 때문이다. 1993년 남서벽에서 숨진 남원우, 안진섭 대원과 2007년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박 대장과 함께 1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동생 같은 후배들이었다. 이들이 숨진 날짜는 공교롭게도 모두 5월 16일. 박 대장이 1993년 남서벽에 실패한 뒤 방향을 돌려 남동릉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날도 같다.
“희준이와 현조 등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들에게 한 약속을 이제야 지켰습니다. 어깨가 가벼워진 것 같네요.” 무전기를 통해 전해지는 박 대장의 음성은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