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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21일 0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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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일본은 ‘간(間)의 문화’에 가깝다. 間(간격)이 유지되도록 和가 기능하는 문화다. 인간미가 없다.
김인식 감독은 ‘융화의 리더십’으로 각인된다. 김 감독의 和는 일본의 그것과 달리 스킨십이 동반된다.
김인식 리더십의 에센스인 융화를 이루는 뼈대는 형평성이다. 형평성에 근거해 팀원 전체의 콘센서스(consensus, 교감)를 끌어낸다.
도쿄라운드 개막 직전까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은 추신수의 거취로 뒤숭숭했다. 당시 김 감독이 가장 걱정한 건 추신수가 뛰느냐, 못 뛰느냐가 아니었다.
추신수 소동이란 일련의 과정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박탈감을 가질까봐 근심했다.
“추신수만 지명타자로 뛰고, 출전이 제한받는 특혜 아닌 특혜 속에서 역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온 나머지 선수들은 뭐가 되느냐?”라고 김 감독은 토로했다.
이번 대회 들어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 등 한화 선수들이 잘한다는 얘기가 많다. 뒤집어 보면 김 감독이 자기팀 선수를 그만큼 중용하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김 감독 나름의 형평성이 작용한 결과다. 김 감독은 말한다.
“추신수도 못 쓰고 있는 판에 한국 프로팀 선수라고 마구 쓰면 말 안 나오겠어?”
정작 선수를 뽑을 땐 그 반대였다. 코치진 전원의 의견을 물어서 선수를 발탁했는데 애당초 이범호는 탈락했다.
최정과 이범호가 경합했지만 마지막 순간 김 감독이 최정의 손을 들어줬다.
김태균의 경우는 코치진 전원이 뽑자고 투표했지만 김 감독이 유일하게 반대해 만장일치가 안 됐다고 한다.
이렇듯 김 감독의 형평성이 권위를 갖는 근원은 자기희생에 바탕하고 있어서다. 애당초 그가 WBC 대표팀을 맡은 것부터가 멸사봉공이었다.
대표팀이 이범호 최정 정현욱 박기혁을 끝까지 안고 간 것, 김병현을 읍참마속 한 것은 김인식 리더십의 형평성이 작용한 산물이었다.
20일 일본전은 패배를 감수하고도 못 뛴 선수 위주로 기회를 줬다. 감을 잃은 추신수를 (매치업에 따라)교체하지 않다가 결국 병살타, 흐름을 놓쳤다.
그러나 김 감독은 지더라도 선수들의 자존심을 챙기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감독과 선수는 무언(無言)으로 소통하고, 팀은 하나로 융화된다.
김인식 리더십의 믿음은 ‘묻지마 식’이 아니다. 사족 하나. 김 감독이 하와이 캠프로 떠나기 전, 경제서적의 서평을 부탁받았다. 글은 다 써왔고, 사인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사인할줄 알았는데 잠깐 쓱 읽어보더니 김 감독은 한 대목을 가리켰다.
“선수를 끝까지 믿는다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믿으면 나머지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라고?” 그 부분을 수정하고 나서야 김 감독은 사인을 해줬다.
“믿지 못하면 쓰지를 말고, 일단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人不用 用人不疑).”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철칙을 연상시킨다. 분야는 달라도 고수끼린 통한다.
김영준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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