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진태, 다부진 도전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성남중 에이스 박진태 군이 멋진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그는 “청각장애인 부모님과 동생들의 행복을 위해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성남중 에이스 박진태 군이 멋진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그는 “청각장애인 부모님과 동생들의 행복을 위해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한국 최고의 투수되어 청각장애 부모님 행복하게…”

성남중 2학년 사이드암 투수 박진태(14) 군은 호리호리하다. 키는 167cm인데 몸무게는 50kg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팀의 에이스다. 야구밖에 모르는 ‘베이스볼 키드’다.

박 군의 부모는 모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인 그의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잇고 있다.

박 군은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말부터 한 달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야구단 회비 30만 원을 3개월째 밀리면서 일부 학부모들이 “회비를 안 낸 야구부원이 야구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군은 방과 후 야구부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셋집 옥상에서 바벨을 들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박 군의 얼굴은 해맑았다. 가난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박 군의 등번호는 1번. 야구부 선배들이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되라”며 준 선물이다.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5도까지 내려간 18일. 박 군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성남중 운동장에서 열린 경기 부천중과의 연습경기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얼어버린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어깨가 빠져라 공을 던졌다.

경기를 마친 박 군은 싱글벙글했다. 이날 2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 그보다 몸집이 2배는 커 보이는 상대 타자들을 땅볼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는 뿌듯함 때문인 듯했다.

휴게실에서 만난 박 군의 양말 양쪽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경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자주 양말에 구멍이 난다”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가 야구단 회비를 3개월이나 못내 야구를 못하게 됐을 때 박 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오히려 걱정했다.

박 군이 야구를 하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부모님과 세 명의 동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성남중 박성균 감독은 “진태는 공 끝이 좋고 제구력이 뛰어나 체력만 보완하면 크게 성장할 선수”라고 말했다.

박 군이 좋아하는 선수는 시속 150km대 강속구를 던지는 일본 야쿠르트의 마무리 임창용과 SK 마무리 정대현. 프로에 진출해 신인왕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대한야구협회에 따르면 11월 현재 전국에 중학교 야구부는 78개교 1634명에 이른다. 이들 학교에 1, 2명씩은 박 군처럼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그런 박 군에게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야구 LG 구단이 박 군처럼 생활이 어려운 서울지역 야구 꿈나무 10명에게 1년 치 야구단 회비와 간식비로 500만 원씩 지원하기로 한 것.

LG는 30일 오후 1시 잠실구장에서 이들을 초청해 사랑의 걷기대회와 김재박 감독, 유지현 코치가 참가하는 스페셜 야구 경기 등 ‘러브 페스티벌’을 연다. LG는 해마다 야구 꿈나무를 지원하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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