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두산 정재훈의 새출발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7시 54분


2군 딛고 선 인생1막 ‘마무리’…다음 테마는 ‘선발’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기를 통과할 때면 과연 끝이 있기나 할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두산 정재훈(28·사진)도 그랬습니다. 그의 2008년 여름은 참 길고 혹독했거든요. “자신감이 너무 없었어요. 내 공을 내가 믿지 못하고 늘 불안했으니까요. 마운드에 서면 늘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마무리에서 밀려나면 뭘로 먹고 사나 걱정도 되고….”

정재훈은 2005년 구원왕 출신입니다. 2006년에도 38세이브를 올린 국내 정상급 마무리투수였죠. 하지만 3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2007 시즌 개막전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올해까지 가까스로 마무리 자리를 유지했지만 예전같은 신뢰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소위 경기를 ‘말아먹는’ 횟수도 조금씩 늘어만 갔습니다.

4년 만에 처음으로 2군도 가봤습니다. 그래도 그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답니다. 스스로도 위태롭게 느껴졌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2군에서 선발로 등판하면서 정말 공을 많이 던졌어요.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나 스스로 내 공이 어떤지 자꾸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극약처방’은 확실히 통했습니다. 다시 1군에 올라온 그는 선발 첫 등판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졌습니다. 사라졌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마무리로 돌아왔다 실패도 맛봤지만 “한 번 자신감을 되찾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마음이 참 좋더라고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플레이오프 4승 중 3승. 정재훈의 부활을 알리기엔 손색이 없습니다. 스스로는 “중간에 나간 건데요, 뭘”이라고 손을 내젓지만, 그의 존재감은 분명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한 때 그를 질책했던 김경문 감독도 수훈선수로 정재훈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정재훈은 그렇게 인생의 2막을 엽니다. 올해가 끝나면, 4년간 달아온 ‘마무리’ 타이틀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선발투수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합니다. 5년간 만나온 고주희(28) 씨와 12월13일에 결혼하거든요. 부상으로 힘들어하던 데뷔 초부터 그의 곁을 지킨 고 씨는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전부 묵묵히 지켜봐준”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힘들 때 조용히 내 얘기를 들어주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얘긴 꼭 써주세요. 신부 손가락에 꼭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끼워주고 싶다고요.”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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