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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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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파전이 아니었다. 원맨쇼였다.
개회식이 열렸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국가체육장에서 16일 열린 육상 남자 100m 결승. 육상의 꽃으로 지구촌의 관심을 모았던 이날 레이스의 승자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22)였다. 볼트는 독주 끝에 9초70 벽을 무너뜨린 9초69의 세계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볼트, 아사파 파월(26·자메이카), 타이슨 게이(26·미국)의 3파전은 게이가 준결승에서 탈락하면서 일찌감치 무산됐다. 자메이카는 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 첫 금메달을 따면서 명실상부한 ‘스프린트 왕국’의 위용을 갖춘 반면 16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던 미국은 무너졌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레이스였다. 볼트는 출발이 늦었다. 출발 반응 속도가 0.165초로 7위에 그쳤다. 0.134초를 기록한 파월보다 0.031초나 뒤졌다. 볼트는 믿기지 않는 스피드로 50m도 지나지 않아 선두로 치고 나갔다.
결승선을 20m 앞두고는 양팔을 벌리며 관중석을 쳐다보는 여유를 부렸다. 골인 직전에는 가슴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고도 세계기록을 깼다. 다른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기록을 줄여 보려고 결승선 통과를 앞두고 가슴을 내미는 ‘런지 피니시’를 했지만 볼트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러닝 피니시’를 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에만 나가면 힘을 못 쓰는 파월은 5위에 그쳤다.
백형훈 대한육상경기연맹 기술위원장은 “결승에서 그런 액션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예선을 치르면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 것 같다”며 “다른 선수들처럼 끝까지 전력 질주를 했다면 9초60대 초반 기록을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cm의 큰 키를 이용한 폭발적인 스피드가 지구촌을 열광시켰다. 볼트가 100m를 달리는 데는 41.5보만 필요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평균 걸음수인 45보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00m 챔피언 모리스 그린(미국)은 45보를 내디뎠고 1991년 도쿄 세계육상선수권에서 9초86의 당시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칼 루이스(미국)는 43보에 결승선을 지나갔다. 이날 2위를 한 리처드 톰슨(트리니다드토바고)은 44보였다.
볼트가 폭발적인 파워를 낸 원동력은 무릎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파워 존. 일반적으로 키가 크면 허벅지가 잘 발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볼트는 175cm인 모리스 그린보다 더 탄탄한 하체를 자랑한다. 여기에 상체도 마치 조각한 것처럼 단련돼 있어 초반 20m까지 다른 선수들보다 뒤처졌지만 이후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22세인 볼트가 막판 스퍼트를 하지 않고 9초69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9초50대 기록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볼트와 2위 톰슨(9초89)과는 0.2초나 차이가 났다. 소수점 이하 두 자릿수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 1952년 헬싱키 대회 이후 2위를 0.2초 이상 따돌린 선수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의 루이스뿐이었다. 루이스는 당시 100m, 200m,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 스프린트 트레블(단거리 3관왕)이 됐다. 볼트는 20일 200m, 22일 400m 릴레이에 출전해 24년 만의 스프린트 트레블에 도전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