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골프 다이어리] 아줌마, 첫 그린출격하던 날

  • 입력 2008년 6월 4일 09시 21분


늦깎이 골퍼 미시즈 문.

주위 친구들은 적어도 중학생 이상 애들이 있는데, 너무 늦게 아줌마 타이틀을 단 미시즈 문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애가 있다.

한참 공부하는 애들이라 밤늦게 들어오고, 남편 역시 새벽에나 들어오니, 골프라도 안하면 너무 심심하고 시간이 안 간다는 팔자 좋은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하루에 학원 3∼4 군데를 도는 기사노릇 해주고, 밤엔 애들 영어숙제 한자숙제 해주다 보면 밤 12시 넘기는 건 부지기수.

이렇게 라이프사이클이 안 맞아서 어디 인간관계가 남아나겠나 싶어, 결심 또 결심해서 무작정 한달 레슨 받고 머리 올리러 나갔다.

첫 라운드 잡아놓고 나름 열심히 골프채 휘두르며 손에 물집 잡히게 연습했는데, 막상 그날이 오니 심란하기 그지없다. 가기 싫다. 무섭다. 폭우라도 와서 취소된다면 ㅠㅠ 하늘도 무심하지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야! 체력이 실력이야. 좀 먹어둬. 뛰어 다니려면 많이 먹어야지. 호호홍∼

평소 애랑 싸워가며 뺏어먹던 소시지가 어쩜 이리도 맹탕인지.

아! 대학 입시 시험 보러갈 때 보다 더 떨리는 구나.

남편이 챙겨준 우황청심환. 오∼∼ 너만 믿는다.

1번 홀로 가는데, 아, 심봤다!!

저 돌계단, 저 돌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해야겠다. 순간 스치는 어이없는 아이디어. 그냥 획 넘어져서 다리라도 삔다면, 오늘은 날 빼줄 거 아냐.

설마 아픈 사람보고 계속하라고 하진 않겠지.

“야, 너 떨고 있니? 괜찮아∼” 옆에 있던 친구, 내 손을 꼭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위로를 한답시고 떠들어 댄다.

“나 머리 올리던 날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

야∼∼ 제발, 이 손 좀 놔 달라고요.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친구들 하나 둘씩 티샷을 하고 늦깎이 미시즈 문, 드디어 생애 첫 티샷을 하는 순간.

“그래, 헤드업 하지 말고 끝까지 공만 보고 치자, 공! 공!”

하나∼ 두울 ∼ 셋!!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들려오는 언니들의 함성소리. 야∼∼∼∼떴다!!!

뭐라고? 떴다고? 헛스윙도 아니고, 바로 옆 카트 길도 아니고, 앞에 있는 해저드도 아니고, 제대로 떴다고?

헤드업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충고에, 우아한 피니시도 잊은 채, 고개 한번 안 들고 있던 미시즈 문. 야심 차게 고개를 들고, 멋지게 大자를 그린다.

야호!! 여러분 싸랑해요∼∼ 아름다운 필드에요∼∼.

나 이러다 미셸 위 되는 거 아냐 호홍홍∼

흥분의 도가니에 취해 발 동동 구르고 있는데, 조금만 빨리 진행해달라는 캐디언니의 말.

무슨 뜻인가?? 친구들 카트타고 지나가며 소리쳐 웃는다. “야. 빨리 뛰라는 얘기야. 미시즈 문∼∼ 뛰어, 뛰어∼∼”

그래 오늘은 뛰자, 뛰는 게 어디야? 뛸 만큼은 날렸다는 거 아냐. 앗싸∼∼.

언젠가는 저들처럼 우아하게 카트 타고 유유자적 웃을 때가 있겠지. 암만∼ “미시즈 무∼운∼ 나가신다∼∼길을 비켜라”

박 희

방송 PD출신으로 산책과 요가를 즐기고

언제나 굿샷을 날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영원한 골프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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