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주먹… 방화… ‘축구사랑의 오버’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유럽형 훌리건이 국내 축구계에도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선 훌리건들의 충돌로 수백 명이 다치고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사진은 2006년 10월 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벌어진 파나시나이코스와 AEK 팬들 간의 충돌 장면. 10여 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유럽형 훌리건이 국내 축구계에도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선 훌리건들의 충돌로 수백 명이 다치고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사진은 2006년 10월 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벌어진 파나시나이코스와 AEK 팬들 간의 충돌 장면. 10여 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 2일 서울 - 수원전서 상대팀 팬 폭행사태

자존심 싸움이 폭력으로… ‘한국형 훌리건’ 우려

유럽축구의 골칫거리인 훌리건들이 국내 축구판에도 등장하는가.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가 열린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수원의 2-0 승리로 끝난 뒤 수원 팀 응원을 왔던 대학생 이모(22) 씨가 경기장을 빠져 나가다 서울 팀 응원단 이모(26)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피해자 이 씨는 “출구 쪽으로 가는데 30m 전방에 있던 서울 팬들이 욕설과 함께 달려들며 주먹으로 얼굴을 쳐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뒤이어 여러 명이 몰려들어 쓰러진 자신을 짓밟아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 씨 외에도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잇달았다.

가해자 이 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서울 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화가 나서 그랬다. 원래 축구팬 사이에는 다른 팀 응원단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이 씨는 “학교에서 서울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과 수원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함께 왔다. 경기가 끝난 뒤 함께 모여서 돌아가기로 해서 만나기 위해 간 것뿐이다”고 밝혔다. 경찰은 “가해자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다”며 “경기장 내 주류 판매 허용이 경기장을 폭력적으로 몰고 간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날 서울 팬들이 보여준 모습은 집단 광기 그 자체였다. 쓰러진 이 씨를 경비원들이 경기장 내 사무실로 대피시켰으나 술 취한 팬들이 쫓아와 “치료비를 물어 줄 테니 끝까지 해보자”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양 팀 응원단 각각 2000여 명씩 4000여 명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두 팀의 경기는 지난해 한 경기에 5만5000여 명이 입장해 프로축구 한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우는 등 프로축구 최고의 ‘빅카드’로 꼽혀왔다.

이날 사고도 두 팀 응원단이 몇 년 전부터 벌여온 격렬한 자존심 싸움이 원인. 지난해에는 수원 팀의 응원석에서 불이 났고 2006년에는 서울 팀의 응원석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용의자는 모두 상대팀 응원단원이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원 팬들이 13일 두 팀이 다시 맞붙는 경기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한편 서울 팬들도 수원 삼성 팬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어 대형 난투극으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서울 마포경찰서는 경기 당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양 팀 응원단을 분리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양 팀 응원단의 앙금은 오랫동안 쌓인 것이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FC 서울 관계자들은 “일부 강경 팬의 이성을 잃은 행동 탓에 골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유럽형 훌리건들이 등장하기 전에 시급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