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야구단’ 공중분해 위기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필승보다 중요한 건 필생’ KT의 야구단 인수 철회 소식이 전해진 11일 현대 야구단 선수들이 경기 고양시 원당구장에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김시진 감독의 훈시를 듣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필승보다 중요한 건 필생’ KT의 야구단 인수 철회 소식이 전해진 11일 현대 야구단 선수들이 경기 고양시 원당구장에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김시진 감독의 훈시를 듣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KT가 프로야구 현대 인수 방침을 공식 철회했다.

현대 매각에 나섰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농협중앙회와 STX그룹에 이어 이번 KT와의 협상마저 결렬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현대가 공중분해되고, 올 시즌을 나머지 7개 구단으로 운영해야 할 가능성도 커졌다.

○ KT, 왜 철회했나

KT는 11일 긴급 이사회를 연 뒤 “성장 정체 극복을 위해 경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야구단 창단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며 인수 방침을 철회했다. KT는 “KBO와의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KBO가 지난해 12월 27일 “KT가 현대를 인수해 새 야구단을 창단한다”고 발표한 지 딱 보름 만의 뒤집기 결정이다.

KT는 야구단 창단에 사내외의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고 인수 추진 과정에서 각종 추측성 기사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9명의 이사가 참여한 이날 이사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KT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KT는 “기존 60억 원 외에 추가될 가입금이 ‘걸림돌’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KT의 한 관계자는 “KBO에서 구체적인 추가 금액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금액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KBO가 당초와 달리 선수 수급이나 홈구장과 관련해 말을 바꾸면서 일이 틀어졌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KBO의 한 관계자는 “변명일 뿐이다. 내부 사정으로 창단을 접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7개 구단으로 가나?

올해 프로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예년과 달리 3월 말로 당겨 개막한다. 시즌 개막까지 채 석 달도 안 남았다. 따라서 현대는 20일까지 새 인수자가 나타나는 등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웨이버 절차에 따라 선수단이 해체된다. 일부 주전급 선수들은 다른 구단으로 옮겨가지만 남은 선수들은 유니폼을 벗게 된다.

이렇게 되면 1991년 쌍방울의 가세로 8개 구단으로 운영되던 프로야구는 17년 만에 7개 구단 체제로 돌아간다. 총경기 수는 504경기에서 420경기로 줄어들고, 매일 한 팀씩은 쉬어야 한다.

한편 현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 인수자가 나오거나 △현대그룹 계열사가 다시 운영금을 지원하거나 △KBO의 관리와 다른 구단의 지원 속에 ‘관리구단’이 돼 시즌을 치르는 방안 등이 있다.

KBO 하일성 사무총장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KT-KBO 서로 “네 탓” 떠넘기기▼

“국내 최대 통신업체 KT의 ‘한바탕 쇼’에 프로야구계가 놀아났다.”

KT가 11일 프로야구단 창단 백지화를 선언하자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침통함과 분노에 휩싸였다.

KT는 지난해 12월 27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감동을 제공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진다며 프로야구단 창단 추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프로야구단 가입비 60억 원 이외에 어려운 KBO 사정을 감안해 추가 비용을 요청하자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삼성 김응룡 사장은 “KBO 이사회가 많은 걸 요구한 게 아니다. 이사회는 KT를 적극 환영했고 KT가 60억 원만 내겠다고 고집해도 이를 수용하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롯데 이상구 단장은 “프로야구 활성화를 위해 조금만 더 성의 표시를 해 달라는 거였는데 KT가 너무 쉽게 포기했다”며 아쉬워했다.

LG 김연중 단장은 “프로야구단 사장단이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메이저리거 서재응과 김선우가 국내에 돌아온 만큼 이제는 프로야구단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KT의 인수 대상이었던 현대구단은 침통한 분위기. 현대구단 관계자는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현대그룹이 일정 기간이라도 다시 맡아 주는 방법밖에 없다. 야구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KT의 무책임한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롯데 주장 정수근은 “KT는 야구팬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이게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는 대기업이냐”며 반문했다.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메이저리그는 30개 구단이 희생을 감수한 덕분에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 프로야구도 8개 구단을 유지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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