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최홍만 ‘투지도 없고 훈련도 않고...’

  • 입력 2007년 12월 9일 18시 33분


지난 2005년 9월 23일 일본의 오사카돔. 격투기 입문 1년도 채 되지 않아 6전 전승으로 승승장구하던 최홍만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 K-1의 ‘검은 야수’ 밥 샙. 이미 밥 샙은 4차례나 K-1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을 지낸 어네스트 호스트까지 물리치며 K-1의 강자로 군림하던 파이터였다.

최홍만은 밥 샙과의 시합에서 놀라울 정도의 투지를 발휘하며 판정승을 이끌어냈다. 당시 최홍만은 밥 샙과 무수한 펀치를 주고받으며 K-1 역사상 최고의 난타전을 펼쳤다. 그토록 얻어맞으면서도 주먹을 계속 내뻗는 최홍만의 투지는 눈물겨웠다. 판정에서 최홍만의 손이 들려지는 순간 전 국민은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이 흘렀다. 현재의 최홍만은 많이 달라졌다. 전적을 쌓아가면서 기술도 늘었고 스타일도 전보다 한결 세련됐다. 그러나 최근 1년 사이에 팬들에게 감동마저 안겨줬던 최홍만의 그 불같은 투지는 실종되고 말았다.

지난 3월 요코하마 대회에서 마이티 모에게 충격적인 KO패를 당한 후 최홍만의 플레이가 극도로 위축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MBC ESPN의 이동기 해설위원은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후 어느 정도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도 맞고 쓰러져보니 과거처럼 겁 없이 달려들기는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격투기 선수들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 내야 하는데 최홍만은 아직까지 그런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최홍만은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마이티 모와의 리턴매치와 이번 제롬 르 밴너와의 월드그랑프리 8강전에서 좀처럼 과감한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모와 밴너는 모두 강한 훅을 자랑하는 선수들. 최홍만이 모와 밴너에게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 것은 강펀치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올해 맞붙은 한 수 아래 상대였던 마이크 말론과 게리 굿리지전에서 시종일관 공세를 펼친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위협적인 펀치를 가진 상대와의 시합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과의 시합 스타일이 명확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강한 상대와의 대결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2년전 밥 샙, 그리고 지난해 세미 슐트와의 시합에서 최홍만은 전혀 물러서지 않으며 맞섰고 결국 승리를 이끌어 냈다. 최소한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홍만은 라운드 내내 탐색전을 펼치거나 난타전이 두려워 뒤로 물러서는 일은 없었다. 마이티 모에게 당한 KO패의 충격이 여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정신적인 이유 외에도 최홍만이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훈련 부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번 밴너 전에서 최홍만은 2라운드부터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3라운드에서는 아예 흐느적거리기까지 했다. 대회 전 스태미나 강화에 신경 썼다고 한 말이 공염불이 됐다. 또한 시합을 앞두고 몸무게가 7kg나 불어나 도무지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체력 저하와 체중 증가의 원인은 훈련 부족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중요한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두고 댄스 앨범 발표 등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분명히 최홍만이 비판을 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이제 최홍만의 약점은 모두 드러났다. 김남훈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마이티 모처럼 인사이드로 파고들어 오버헤드 펀치를 날리거나 밴너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에 최홍만이 완전히 당했다.”며 “노출된 약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최홍만의 약점이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신장의 우위로 상대를 위압하는 것도 한계가 왔다. 기술적인 보완 이전에 잃어버린 ‘헝그리 정신’을 되찾는 일이 급선무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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