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라이벌에 압도당한 이승엽

  • 입력 2007년 10월 20일 12시 41분


어느 누구와 비교된다는 것은 늘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비교대상이 자신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경우 주변의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이승엽(31.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심정이 그렇다. 일본프로야구 클라이막스 시리즈 제 2 스테이지에서 맞붙은 주니치 드래곤즈는 이승엽에게 유난히 께름칙한 상대다.

주니치에는 이승엽의 라이벌이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있다.

우선 주니치의 특급용병 타이론 우즈는 이승엽에게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승엽은 97년 삼성 시절 첫 홈런왕에 등극하며 국내 무대를 평정하는 듯 했으나 이듬해 등장한 우즈(당시 두산)에게 홈런 킹 자리를 넘겨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절치부심한 이승엽은 이듬해 54홈런으로 1년 만에 우즈의 기록을 갈아 치웠고 2001년에도 우즈를 제치고 홈런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이승엽은 또 한 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삼성과 두산의 2001년 한국시리즈는 이승엽과 우즈의 거포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이승엽은 시리즈 6경기 타율 0.375에 3홈런으로 제 몫을 다했지만 타율 0.391에 4홈런을 치고 시리즈 MVP까지 거머쥔 우즈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시리즈 우승도 물론 두산에게 돌아갔다.

5년의 시간이 흘러 이승엽은 요미우리 입단 후 같은 샌트럴리그 소속 주니치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우즈에 설욕을 다짐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시즌 중반까지 홈런 선두를 달리던 이승엽은 후반기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고 이 사이 우즈에게 통한의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우즈에게 당한 3번째 패배. 이승엽에게는 우즈라는 존재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병규(33. 주니치) 역시 이승엽의 또 다른 라이벌이다. 국내 프로야구 시절부터 둘은 삼성과 LG라는 제계 라이벌 팀의 간판스타로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다.

공교롭게도 일본 진출을 선언한 이병규가 택한 팀은 요미우리의 라이벌 주니치 드래곤즈. 같은 ‘LEE’라는 성까지 가진 탓에 일부 일본 언론까지 나서 둘의 미묘한 경쟁 심리를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이병규는 이승엽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일본야구 적응 문제에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클라이막스 시리즈 제 2스테이지에서 이승엽은 두 명의 라이벌인 우즈와 이병규 중 어느 누구에게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승엽은 지난 두 경기에서 3안타를 뽑아냈지만 전매특허인 홈런포는 가동되지 않았다. 반면 우즈와 이병규는 나란히 홈런 1개씩을 뽑아냈다. 특히 우즈는 두 경기에서 볼넷만 4개를 골라내는 등 출루율면에서도 이승엽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이병규 역시 만만치 않다. 1차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2차전에서는 홈런 1개와 주니치가 승기를 잡게 된 계기를 만든 7회 2타점 3루타로 만점활약을 펼쳤다. 안타 1개를 기록했으나 병살타 2개를 때리며 공격의 맥을 끊은 이승엽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 5전 3선승제의 시리즈에서 2연패를 당해 벼랑 끝에 몰린 요미우리는 4번타자 이승엽의 썩 미덥지 못한 방망이에 속만 태우고 있다.

지금 이승엽은 일본시리즈 진출 실패와 라이벌과의 대결에서도 지는 두 가지 수모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다. 이승엽에게 20일 3차전은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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