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이운재'…한국 승부차기로 日꺾고 3위

  • 입력 2007년 7월 29일 14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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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혈투 속에 타오른 한국 축구의 투혼이 숙적 일본을 꺾었다.

축구대표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고 2007 아시안컵축구에서 3위에 올랐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8일 밤(이하 한국시간)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경기장에서 열린 3-4위 결정전에서 일본과 전후반과 연장, 120분에 걸친 사투를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수문장 이운재의 마지막 선방에 힘입어 6-5로 이겨 3위를 차지, 2011년 차기 대회 본선 자동출전권을 따냈다.

한국은 후반 11분 중앙수비수 강민수가 레드카드를 받고, 이에 항의한 베어벡 감독 등 코치진 3명이 한꺼번에 퇴장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하지만 위기에서 몸을 내던진 태극전사들의 육탄방어가 후반과 연장 전후반 계속된 일본의 파상공세를 견뎌냈고, 마침내 승부차기 5-5에서 이운재가 하뉴 나오다케의 킥을 막아내 짜릿한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에서 고작 3골밖에 뽑아내지 못하는 극심한 골 결정력 부족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한국은 일본과 역대전적에서 38승19무12패(승부차기 승리는 무승부로 기록)로 우위를 지켰고, 7월 불패의 신화도 이어갔다.

적어도 일본에는 질 수 없다는 한국의 오기가 이뤄낸 극적인 승리였다.

베어벡 감독은 조재진을 원톱에 놓고 염기훈, 이천수를 좌우 날개로 펼쳤다. 공격 성향을 높인 중원엔 김두현, 김정우가 동시에 포진하고 오장은이 뒤를 받쳤다.

포백 수비진과 이운재는 그대로 나왔다.

일본은 새 얼굴을 기용한다던 이비차 오심 감독의 말과 달리 준결승과 거의 같은 베스트 멤버가 나왔다.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전방에 섰고 나카무라 순스케의 왼발로 기회를 노렸다.

초반 5분 살얼음 탐색전을 끝낸 뒤 한국이 위기를 맞았다.

나카무라의 로빙 패스에 구멍이 뚫려 엔도에게 왼발 슛을 허용했다. 다행히 볼은 골대를 빗겨나갔다.

11분 엔도의 프리킥이 벽을 통과했고 이운재가 볼을 덮치듯 가슴팍으로 막아냈다.

전반 중반부터 태극호의 반격이 세차게 시작됐다.

16분 김두현이 아크로 흐른 볼을 달려오는 탄력으로 발등에 맞췄다. 골문 왼쪽으로 빨려들듯 쭉 뻗어나간 볼이 골 포스트를 지나쳐 광고판을 때렸다.

17분부터 5분 간 일본의 세트 플레이를 끈질긴 방어로 막아낸 한국은 전반 23분 염기훈의 왼발 프리킥부터 밀물 공세를 폈다.

염기훈의 프리킥은 골키퍼 가와구치가 간신히 펀칭했고 이어 이천수의 왼발 슛과 오장은의 로빙슛이 잇따랐다.

베어벡 감독은 전반 40분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던 이근호를 염기훈 대신 투입했다.

41분 상대 패스를 잘라낸 김두현이 때린 회심의 오른발 슛은 가와구치의 다이빙에 걸렸다. 안타까운 탄성이 쏟아져 나온 순간.

전반 종료 2분 전 아찔한 위기가 있었다. 나카무라의 코너킥이 문전으로 흘렀고 수비수 나카자와 유지가 골라인 바로 앞에서 슛을 때렸다. 필사적으로 몸을 내던진 이운재의 육탄 방어가 없었다면 바로 실점이었다.

후반 8분 김치우의 빨랫줄 중거리슛, 2분 뒤 이천수의 원바운드 헤딩슛으로 공세를 이어간 한국은 후반 11분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았다.

전반 경고를 한 번 받은 강민수가 다카하라를 막다 파울을 하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알바드와위 주심이 느닷없이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코치진이 항의하자 주심은 베어벡 감독과 홍명보 코치, 코사 골키퍼 코치를 모조리 퇴장시켰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었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조치였다.

압신 고트비 코치만 남아 전열을 지휘했다.

수적 열세에 몰린 태극전사들은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후반 28분 교체 멤버 하뉴 나오다케에게 결정적 위기를 맞았지만 이운재가 또 몸을 던져 막아냈다.

2분 뒤 역습에 나선 이천수는 오른쪽 측면을 돌파하다 슈팅을 때렸지만 가와구치에게 막혔다.

10명이 싸운 한국은 일본의 일방적인 공세를 투혼의 육탄 방어로 가까스로 막아냈다.

승부는 다시 연장으로 넘어갔다. 태극전사들은 대표팀 사상 초유의 세 경기 연속 120분 혈투를 시작했다.

연장엔 분위기가 격앙됐다. 일본 선수들의 신체 접촉에 흥분해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다.

연장 후반 10분 하뉴의 노마크 슈팅 등 몇 차례 아슬아슬한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몸을 내던진 방어로 볼을 막았다.

종료 2분 전 사토의 방향을 바꿔놓는 논스톱슛은 이운재가 신들린 선방으로 잡아냈다.

몇몇은 거의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투를 벌였다. 이천수는 허리를 움켜잡은 채 쓰러졌고, 김정우 등 몇몇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

혈투를 끝내고 맞이한 승부차기.

선축에 나선 한국은 조재진, 오범석, 이근호, 이호, 김진규가 차례로 킥을 꽂아 넣었다. 일본도 나카무라, 엔도, 아베, 고마노, 나카자와의 킥이 모두 들어갔다.

한국의 6번 키커 김치우의 킥은 가와구치에게 방향을 읽혔지만 볼이 빨라 구석으로 꽂혔다.

그리고 다시 이운재가 한일전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앞선 5번을 모두 놓친 이운재는 일본 6번 키커 하뉴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킥 방향을 읽은 그는 볼이 발에 닿는 순간 몸을 띄워 올렸고 다이빙에 걸린 볼은 공중으로 떴다가 그냥 땅에 떨어졌다.

지친 몸으로 어깨를 걸고 있던 태극전사들은 결승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마지막 환호로 포효했다.

한편 이번 대회를 3위로 마감한 축구대표팀 23명과 베어벡 감독은 30일 오전 6시40분 대한항공 628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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