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농구 96년史에 비친 ‘어제와 오늘’

  • 입력 2006년 12월 7일 02시 59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공(현 중국)을 꺾고 은메달을 확정 지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선수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공(현 중국)을 꺾고 은메달을 확정 지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선수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0년 9월 아시아농구선수권 2연패를 이룬 여자농구대표팀 선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0년 9월 아시아농구선수권 2연패를 이룬 여자농구대표팀 선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프로농구 삼성 조승연 단장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대통령에게서 직접 농구 지도를 받은 것이다. 조 단장은 여자국가대표 감독 시절인 1984년 6월 하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신현수 코치, 12명의 선수와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 이미 여러 차례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그날은 처음으로 대통령 가족이 머무는 내실까지 들어가 오찬을 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격려하는 자리에서 전 대통령은 김화순 박찬숙 등 선수들에게 일일이 코치를 했다. 슈터 김화순에게 “자네는 첫 번째 슛을 쏘아 실패하면 두 번째 슛을 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러면 안 된다. 한 번 실패해도 마음을 굳게 먹고 되풀이해서 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지적은 평소 조 단장이 내성적인 성격의 김화순에게 자주 말했던 내용과 판박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의 특별과외가 효과를 봤는지 한국 여자 농구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전 대통령이 꼭 이겨야 한다고 지시한 ‘중공(현 중국)’을 꺾고 사상 첫 은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이런 비화는 최근 한국여자농구연맹(KBL)이 발간한 한국 여자농구 역사서 ‘96년 만의 덩크슛’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국민 스포츠로 경기 때마다 수천 명의 만원 관중을 동원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모은 여자 농구는 권력 상층부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957년 숙명여고 농구팀은 필리핀 원정을 다녀온 뒤 경무대를 예방해 이승만 대통령 및 프란체스카 여사와 환담을 나눴다.

1961년 장충체육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박정희 장군배 동남아여자대회 때 상업은행 박신자는 일본 니치보와의 결승 전날 당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전화를 받았다. 육 여사는 “박 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제 남편 이름이 새겨진 우승컵이 현해탄(대한해협)을 건너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박신자가 활약한 상업은행은 1964년 해외 원정을 가려다 대한체육회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자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해 주기도 했다.

최근 침체기에 접어든 여자농구를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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