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점차 쓰디쓴 보약’… WBC 한국, 美에 대패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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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의 블록 슛한국의 신예 김민수(왼쪽)가 솟구쳐 오르며 미국 드와이트 하워드의 골밑슛을 블로킹하고 있다. 한국은 최선을 다했지만 미국의 개인기에 압도당하며 수준 차이를 절감했다. 이훈구  기자
김민수의 블록 슛
한국의 신예 김민수(왼쪽)가 솟구쳐 오르며 미국 드와이트 하워드의 골밑슛을 블로킹하고 있다. 한국은 최선을 다했지만 미국의 개인기에 압도당하며 수준 차이를 절감했다. 이훈구 기자
코트는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1만2477명 관중의 뜨거운 함성은 에어컨에서 뿜어 나오는 찬 공기마저 집어삼킨 듯했다.

땀에 흠뻑 젖은 팬들은 연방 부채질을 하면서도 농구 스타들의 묘기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시키며 경기 내내 열띤 응원을 보냈다.

전후반 40분의 경기가 모두 끝났을 때 스코어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광복절 휴일을 맞아 화려하게 펼쳐진 농구 쇼의 강렬한 인상만이 남았다.

1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의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 마지막 날 경기.

세대교체를 단행한 젊은 한국 농구대표팀은 패기를 앞세워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으로 이뤄진 미국농구대표 ‘드림팀’에 맞섰지만 그 벽은 높기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 팀의 점수 차는 점점 커졌다. 3쿼터 중반 지난 시즌 NBA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 드웨인 웨이드(마이애미)의 앨리웁 패스를 받은 2003년 NBA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호쾌한 슬램덩크를 꽂자 팬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스코어는 63-116으로 한국의 53점차 완패.

한국은 경기 초반 8점을 집중시킨 김주성을 앞세워 13-22로 1쿼터를 끝냈다. 2쿼터 들어 미국의 전면 강압수비에 막힌 한국은 3점슛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을 펼치면서 전반전을 32-65로 크게 뒤졌다.

경기 막판 지역방어까지 써 가며 다양한 전술 실험을 한 미국은 뛰어난 개인기에 끈끈한 수비와 루스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몸을 던지는 투지까지 보이며 탄탄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임스는 경기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그는 19분만 뛰고도 골밑과 외곽을 넘나들며 양 팀 최다인 23득점, 6리바운드, 4가로채기로 눈부시게 활약했다. 폭발적인 덩크슛도 5개나 했다. 제임스는 “오늘 내 모든 역량을 쏟아 붓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의 코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너무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NBA 하부리그에서 뛴 적이 있는 방성윤(21득점)이 공격을 주도한 한국은 미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터키가 출전한 WBC에서 4전 전패했으나 김민수 김진수 하승진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게 수확.

미국대표팀은 16일 경기 동두천시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에서 위문 행사에 참석한 뒤 19일 일본에서 개막되는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기 위해 17일 한국을 떠난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수비-속공 강화 과제로”

▽최부영 한국 감독=중국이 미국에 46점 차로 졌는데 우린 그것보다는 덜 지겠다고 한 약속을 못 지켰다.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특히 공격과 수비 전환이 인상적이었다. 수비는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걸 배워야 한다. 한국의 외곽 공격은 아시아에서 정상권이니만큼 강력한 수비와 속공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양희종 방성윤 김민수 등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한국 재능있는 선수 많아”

▽마이크 샤셰프스키 미국 감독=한국 관중의 뜨거운 응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정말 멋진 경기를 펼쳤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한국에는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중국과 경기를 했지만 한국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장신 선수가 많은 반면 한국은 외곽슛이 좋은 장점이 있다.

한국선수들 경기전 ‘덩크 시위’

○…김민수 김주성 하승진 김진수 등 한국 선수들은 경기 시작 10분여를 남기고 코트에서 몸을 푸는 동안 잇달아 덩크슛을 선보였다. 특히 김민수와 김진수는 360도 회전, 윈드밀(풍차 돌리기) 등 국내 프로농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고난도의 덩크슛을 구사하며 미국 선수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가능성 보여준 한국 선수들…김주성 부상투혼 김민수 슬램덩크 방성윤 21점 폭발

53점차의 스코어가 보여주듯 세계 랭킹 1위 미국과 23위 한국의 실력 차는 컸다.

하지만 한국 젊은 선수들의 투지만큼은 세계적인 스타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세대교체 후 처음 선보인 무대. 아직 미숙하지만 발전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

대회를 앞두고 발목을 다쳐 컨디션이 나빴던 김주성(27·동부)은 미국의 장대 숲을 헤치고 다니며 11득점 5리바운드를 올리는 부상 투혼을 보였다. 김주성은 “수비와 세트 오펜스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많이 배웠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4쿼터 종료 1분 전 림이 부서질 듯한 양손 덩크슛을 터뜨려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김민수(24·경희대·13득점 5리바운드)는 “높이와 힘의 차이를 실감했지만 생각보다는 해볼 만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방성윤(24·SK)의 활약도 돋보였다. 최우수선수로 뽑힌 미국의 르브론 제임스는 “방성윤의 슛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날 방성윤은 3점슛 3개를 림에 꽂는 등 한국선수 중 최다인 21득점을 올렸다.

선진 농구를 실감한 한국농구대표팀은 이제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릴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를 향해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방성윤은 이렇게 얘기했다. “손발을 맞춘 지 얼마 안 됐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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