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렸더니 풀리더라”… 양경석변호사 ‘철인’ 변신

  • 입력 2004년 11월 5일 18시 26분


양경석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열린 제5회 서울 울트라마라톤(100km) 대회에 참가해 한강변을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마라톤클럽
양경석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열린 제5회 서울 울트라마라톤(100km) 대회에 참가해 한강변을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마라톤클럽
양경석(梁璟錫·51) 변호사. 그는 법조계의 ‘고문관’이었다. 운동에 관한 한 젬병이어서 붙은 별명. 40세까지 물구나무서기 한번 못했고 공도 제대로 차 본 적이 없다. 고교시절 체육시간에는 맨손체조 동작도 잘 못해 ‘체조 과외’까지 받았다.

그러던 그가 100km 마라톤을 뛰었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5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100km를 완주해 법조인 최초의 ‘울트라맨(Ultra Man)’이 된 것. 그를 ‘고문관’이라 부르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양 변호사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85년 검찰에 투신했다.

검사생활 10년을 넘기던 94년 그에게 ‘구안(口眼)괘사’가 찾아왔다. 중풍의 일종으로 안면 신경이 마비돼 입과 눈이 떨리고 비뚤어지는 병. 증세가 악화되자 다음해 2월 사표를 냈다.

1년 가까이 유명 병원과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 전국을 누볐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95년 말 그는 친구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헬스클럽과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천달사’(천천히 달리는 사람)로 시작했다. 1개월쯤 지나자 신기하게도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그는 2000년 마라톤 풀코스(42.195km)에 처음 도전해 5시간25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구안괘사도 사라졌다. 그 후 동아마라톤을 포함해 풀코스를 18회나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3시간49분48초.

그는 2002년 6월 일본 돗토리(鳥取)현에서 열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했다. 그러나 63km 지점에서 낙오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울트라마라톤에 다시 도전했으나 45km 지점에서 또 포기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5회 서울울트라마라톤은 그에게 세 번째 도전이었다. 양재천∼탄천∼분당∼탄천∼암사동∼행주산성∼양재천으로 이어지는 순환코스다.

행주산성에 도달했을 무렵 그는 그만 달리고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도 나왔다. 그때 손목을 끈으로 묶고 달리는 두 사람이 보였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도우미 마라토너였다.

‘나는 눈이 떨리기만 했지만 저 사람은 아예 안 보이는 눈을 가졌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달리는데….’ 양 변호사는 다시 이를 악물고 뛰었다.

12시간53분54초로 드디어 결승점에 도착. 645명의 출전자 중 343등이었다. 법조인 최초의 완주 기록. 그는 결승점을 지나면서 소리쳤다. “심봤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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