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11일 12일째 압력솥 바닥이 너무 얕다?

입력 2003-12-16 15:17수정 2009-09-28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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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 중 휴식시간에 대원들에게 나눠줄 간식을 분류하는 오희준 대원.
날씨 :아침에 흐린 후 대체로 맑음

기온 : 영하 12도

풍속 : 초속 7.2m

운행시간 : 07:30 - 18:00(10시간30분)

운행거리 : 22.6km (누계 :186.7km)

야영위치 : 남위 81도30분718초 / 서경 80도 37분116초

고도 : 824m

오늘은 세 구간으로 확실한 구분이 되는 운행이다. 처음 세 시간은 도로공사, 그 다음 네 시간은 바람이 다져놓은 고속도로 질주, 그리고 마지막 구간은 언덕 오르기.

어제의 운행연장이라서 예상은 했지만 어제보다 심한 분설과 굳은 눈 둔덕이 3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둔덕을 넘을 때는 따라가기 싫다는 썰매 끌어당기느라 힘 빼고, 둔덕을 넘어선 뒤에는 분설에 빠진 썰매 끄느라 진 빼고, 빠져 나올 만 하면 또 둔덕이고, 둔덕을 넘으면 또 분설이고. 이런 식의 운행을 3시간 하고나니 대원들 모두 기진맥진. 앞에서 방향 찾으며 루트 파인딩까지 해야 하는 박대장은 나이 한탄을 한다.

"나도 이제 늙었나 벼".

에너지 음료 파시코에 비스킷과 과자를 먹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남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도로공사 구간이 휴식시간과 함께 끝이 나 천만다행이다. 바람에 의해 잘 닦인 굳은 눈 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대원들의 관심사는 '이 길이 어디까지나 갈까?'이다. 잘 가는 썰매 세워놓고 한마디씩 한다. 썰매가 주인의 기분을 이해라도 한 듯 잘도 따라 온다. 대원들의 발걸음도 자연 빨라진다. 그런 기분을 아는지 아침 출발 때부터 흐리던 하늘이 맑게 갠다. 바람이 차가운 것이 운행에 도움이 된다. 너무 추우면 곤란하겠지만 격렬하게 움직이는 대원들의 열기를 적당히 식혀줄 정도의 바람은 필요하다. 아마 바람이 없었다면 어제처럼 푹푹 찌는 듯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도 운행 중에는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지만 휴식시간에 부는 그 바람은 추워 죽을 지경인 미운 바람이다. 간식도 음료도 가능한 빨리 먹어치우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각자 서둘러 박대장의 뒤를 따른다. 고속도로를 달린지 4시간, 잘 나가던 대원들의 행렬이 갑자기 주춤해진다. 언덕길에 접어든 것이다. 벨트에 매달린 썰매는 화물차로 변했다. 노면상태는 비포장이다. 짐을 잔뜩 실은 화물차가 언덕길을 오른다. 속도가 뚝 떨어진 채로 꺼이꺼이 기어오른다. 한 시간 반을 오르다가 멈춰선 박대장이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우리 산에 오르는 거 맞지?"

산에 오르는 기분이었던 거 맞다. 고속도로의 끝이 저만치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다섯 대의 화물차 중 한대가 화물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뒤로 처진다. 언덕을 거의 올라왔을 때 오늘 운행을 중지한다. 바람이 뼈 속까지 시리게 만든다.

해가 하루 종일 머리 위를 맴도니 이틀에 한 번하는 인터넷 중계 일도 충전 걱정은 없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제주도의 강성규(강가이버)가 올라와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만들어준 전원 연결선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고는 대원들의 곤한 잠자리가 내일의 힘찬 운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잘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똑같은 양의 밥을 하는데 어제부터 압력솥의 바닥이 너무 얕게 느껴진다.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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