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봉주 “진수성찬…안마… 결혼하니 좋네요”

  • 입력 2002년 8월 4일 17시 30분


‘한국마라톤의 간판’ 이봉주 선수(오른쪽)와 새색시 김미순씨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한국마라톤의 간판’ 이봉주 선수(오른쪽)와 새색시 김미순씨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뭣이 그리 좋은 걸까. ‘봉달이’ 이봉주(32·삼성전자)와 새색시 김미순씨(32)의 얼굴에선 시종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4월21일 결혼한 ‘한국 남자마라톤의 1인자’ 이봉주와 김미순 동갑나기 부부를 지난달 27일 서울 오금동 우방아파트 신혼집에서 만났다. 8년 연애끝 결혼.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43평 신접살림 집엔 ‘깨소금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

신혼집은 편안한 분위기가 풍겼다. 점잖은 분위기의 체리색 계통의 창문 섀시와 가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각종 인형들과 기념품, 또 수년동안 모았음직한 둥글고 기기묘묘한 수석들. 김씨는 “봉주씨의 취미가 수집이어서 그동안 모은 수석과 기념품을 진열하는데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거실에서 눈에 띄는 게 두 개 있었다. 베란다 맞은편쪽 벽에 걸린 세계전도를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과 TV 반대편 벽에 놓여진 그리스 아테네신전 그림. 김씨는 “봉주씨가 세계를 제패하도록 하기 위해 세계를 우리집으로 끌어들이고 싶었고, 또 2004년 그리스올림픽에서 꼭 월계관을 쓰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그림을 골랐다”고 말했다.

새색시 김씨의 소망은 단 하나, 오직 남편 봉달씨가 건강히 잘 뛰는 것이다. 봉달이의 기상시간에 맞춰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남편이 새벽운동하는 사이 아침을 정성들여 지어 먹인뒤 출근(팀운동)시키고 퇴근해 돌아오면 다시 진수성찬 저녁에 안마까지 해준다. 반찬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최소 15가지 이상은 만든다고.

김씨는 “결혼하면 많은게 변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변한게 아무것도 없어요. 봉주씨는 똑같이 운동하죠. 전 운동하는 남편을 보좌하며 기다리죠. 그걸로 끝이에요. 또 한두달씩 전지훈련을 떠나버리면 혼자 지내야된다”며 푸념이다.

그렇지만 결혼후 더욱 가까이서 남편을 지켜보니 너무 안쓰럽단다. “연애시절때도 봉주씨가 늘 안돼 보였는데 결혼하니 차마 훈련모습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어요. 밥먹고 자는 시간외에는 뛰기만 하니…. 빨리 그만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게 한두번이 아니에요.” 반면 그만큼 존경심이 더 커졌단다. 그렇게 땀을 흘렸기 때문에 ‘국민영웅’이 되었구나라고….

그럼 ‘국민영웅’을 위해 색다른 보양식이라도 매일 준비하는 걸까. “하나도 안해줘요. 여기저기서 좋은 약이 많이 들어와 해줄 필요가 없어요. 또 봉주씨가 약 챙겨먹는 것 하나는 철저해요. 지금까지 이렇게 잘 뛰는 이유가 ‘약발’도 있을 거에요”라며 웃었다.

요즘 ‘봉달이 커플’은 또다른 즐거움에 빠져 있다. 2세에 대한 기대감에 충만해 있는 것. 이봉주가 한달여 신혼의 단꿈에 젖다 6월5일 강원도로 전지훈련을 떠나 한참 땀을 흘릴 때 ‘소식’이 왔단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확인하기 위해 참고 있다가 지난달 25일 이봉주가 훈련에서 돌아오자 병원을 찾아 2세를 초음파촬영으로 처음 봤다. 이제 8주.

“건강하기만 하면돼요.” 누굴 닮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김씨가 답했다. “한다는데 말릴 수가 있나유.” 2세가 마라톤을 한다면 어떻하겠느냐는 물음에 봉달이가 말했다.

부부싸움은 했을까. 김씨는 “몇번 서로 틀어진 적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5분만 지나면 화해해요. 서로 얼굴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그냥 풀어진다”고.

봉달이는 언제까지 뛸 것인가.

“우선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가 목표에요. 꼭 올림픽 월계관을 쓰고 싶어요. 또 은퇴하기전에 2시간6분대를 한번 뛰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져 장담은 할 수 없어요.”

일부에서 마흔이 넘을 때까지 뛰는 ‘국민마라토너’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자 “그렇게 오래까지 뛰고 싶진 않아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도 “가능한 빨리 끝내야지요”라며 거들었다.

그러나 봉달이는 아직은 달려야 한다. ‘색시’와 배속의 아기를 위해. 이봉주는 아빠가 된다는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인 지난달 30일 아시아경기대회 2연속 월계관을 위해 뉴질랜드 해밀턴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4월 보스턴마라톤때 역주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론공부 더 해 명지도자 되겠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봉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선수생활을 끝낸뒤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꺼려했다. 다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계획성있게 살고 있다. 어느 정도 진척되면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목표란 미리 팬들에게 공개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채근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부해서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선수로 키울 재목이 많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노력을 안해 인재를 썩히고 있다.” 이봉주가 선수생활을 끝내고 뭘할 것인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

‘봉달이’의 꿈은 공부하는 지도자. 운동선수 경험만으로는 후배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험에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동안 원없이 뛰었기때문. 풀코스 28번 도전해 27번 완주. 애틀랜타올림픽때 은메달, 2001년엔 세계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까지 제패했다. 이 부분에선 단연코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부족한게 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마라톤화를 벗은뒤에는 곧바로 지도자 수업에 들어가겠다는 게 이봉주의 계획이다. 일본이나 미국쪽에서 마라톤지도에 대해 코칭수업을 쌓고 싶단다. 그래서 요즘 강훈련에 몸이 녹초가 되는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가면서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몸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봉달이’. 그는 또다른 꿈을 위해 달리고 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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