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열광하는가…소설가 한승원씨 관전기

  • 입력 2002년 6월 23일 00시 01분


월드컵 축구 4강이다. 이 땅은 들끓고 있다. 모두들 광기에 젖어들어 전율하면서 절규하고 함성을 질러댄다.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인 채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앞 붉은 악마들의 물결 속에 휩쓸리면서 캐나다로 이민간 친구를 생각한다.

며칠 전 그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그 친구는 한국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8강에 오른 사실 때문에 흥분해 있었다. 가는 곳마다 한국 축구 최고라며 축하를 받는다고. 이 땅 버리고 간 사람이 왜 그렇게 흥분은 한단 말인가. 전화 끊으면서 생각했다. 세계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교포들 가운데 열광하고 있는 사람이 어찌 그 친구 한 사람뿐이랴.

축구는 골대 속의 그물이 출렁거리도록 공을 차 넣는 것으로써 성적 충족감을 얻는 매우 남성적인 운동이고,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상대를 정벌하는 전쟁 대신 공을 상대의 문 안으로 차 넣음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는 스포츠라고 한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어쨌든지, 월드컵 축구 경기는 언제부터인가 참여한 모든 나라와 민족의 실력이나 투지를 저울질하는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다.

얼굴과 팔뚝, 심지어는 상반신 전체에 문신 같은 태극마크를 칠하고 붉은 셔츠를 입은 광주 금남로의 붉은 악마들의 물결 속에는 너와 나는 없고 우리 하나가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부엌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이고을 저고을에서 몰려나온 사람들 사람들.

22년 전 5월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너도나도 금남로 도청 앞 분수대 주위로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바로 그들의 후예들이 지금 새빨간 노도가 되어 비등하고 있다. 길 가장자리에 서있는 전주들과 건물들 바닥에 깔려 있는 아스팔트, 이 땅을 에워싼 하늘과 구름들이 덩달아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함께 출렁댄다.

작열하는 태양과 그 복사열로 말미암아 땀으로 멱을 감은 채 박지성 이영표 이을용 되어 함께 공을 몰고 달린다. 안정환 설기현 황선홍 유상철 홍명보 김태영 되어 달리다가 상대 선수의 반칙에 쓰러지고 거꾸러지고 그랬다가 벌떡 일어나 다시 질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극심한 멀미 같은 어지럼증에 빠져든다.

우리 축구가 세계 4강이 되면 수출이 얼마나 잘 되는가, 세계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게 되는가,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면 통일을 얼마나 앞당기게 되는가. 이런 것들은 이 순간 우리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다. 그냥 하나가 되어 미쳐 절규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하며.

이렇게 하나 되어 미칠 수 있는 것은 우리 겨레의 저력이다. 이것은 안목 있는 고액의 과외 족집게 선생 거스 히딩크의 혹독한 수련의 결과만은 아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서 민주화를 쟁취한 민족이고, 외환위기도 가장 단시일 안에 극복한 민족이다. 오래지 않아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얻어내고야 말 민족이다. 무엇이든지 하려고만 하면 해내는 민족이다. 죽음으로써 민주화를 이룩해낸 성지 광주는 이제 우리 축구 세계 4강의 신화를 창조한 성지가 되었다.

세계의 벽은 결코 뚫지 못할 만큼 두껍지 않고 타넘지 못하도록 드높지 않다는 것, 우리 민족의 기량과 체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제일급이라는 것, 세계 만방 그 어느 누구하고든지 한판 붙어볼 만하다는 것….

이번의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소중한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열광하게 하고 있다. 아, 우리 겨레, 우리 대한민국, 영원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숨쉬며 흘러가는 한 우리 민족 우리나라에는 내내 영광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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