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14일… 오늘을 기억하라”

  • 입력 2002년 6월 15일 00시 04분


▼경기장 주변표정▼

‘인천은 거대한 축제장.’

한국의 첫 16강 진출이 확정된 14일 밤, 인천시내는 축포와 환호의 함성으로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거리를 지나던 차량들이 ‘빵빵 빵빵빵’ 등 응원 리듬에 맞춰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고 경기장과 야외 전광판 중계소 등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악마들은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한국 선수단이 묵고 있는 인천 중구 항동1가 파라다이스 오림포스호텔 1층 팝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에게 맥주를 무료로 무제한 공급하는 등 음식점들도 16강 진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공짜 세례’를 퍼부었다.

인천시청 광장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시민 2만여명은 인천시가 수백발의 축포를 터뜨리자 꽹과리 등을 치며 열광했다.

황선열씨(37·여·인천 남구 학익동)는 “역사적인 현장에서 여럿이 함께 응원을 해서 그런지 함성이 터질 때마다 눈물이 났다”며 기쁨을 이기지 못해 울먹였다.

한국팀 공격수로 후반전에 투입된 이천수가 살고 있는 인천 남동구 만수동 벽산아파트의 주민 2000여명은 이날 아파트 중앙로에 설치한 240인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승리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이들은 ‘이천수 3행시 짓기 대회’를 열어 경품으로 이천수 사인볼 등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문학경기장 일대〓경기장 안팎에서 붉은 옷을 입고 응원을 펼쳤던 축구팬들은 태극기를 망토와 치마 등으로 두르고 거리를 누볐다. 경기장 반경 2㎞ 일대에서 일반 차량의 통행이 통제됨에 따라 도로를 가득 메운 수만명의 ‘붉은 물결’이 조명등에 비춰 장관을 이뤘다.

이들이 소형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파이팅!’ ‘오∼필승 코리아’를 외치자 포장마차 등에 있던 시민들도 이들과 어울려 즉석 춤판을 벌이기도 했다. 외국인들도 태극기를 몸에 걸치고 한국의 16강 진출을 축하했다.

인도에서 함께 온 일행 6명과 함께 나팔 소리에 맞춰 ‘한국, 한국’을 외치던 인도인 비슈(26)는 “한국의 16강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에 앞서 문학경기장에는 ‘한국-일본, 우정(友情)’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머플러를 두른 응원단 200여명이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민단과 총련 등 재일동포와 일본인들로 구성된 ‘KJ클럽’ 회원들인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16강 공동 진출을 열렬히 기원했다.

마쓰모토 겐이치로(松本健一郞·31)는 “당연히 한국팀이 포르투갈을 누르고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인천시내 표정〓경기장과 인근의 문학플라자 등 인천시내 7곳의 야외 중계소에서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채 승리의 감격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경기가 종료되자 미리 준비해 온 폭죽 등을 터뜨리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고 마무리 응원을 끝낸 뒤 일제히 ‘청소, 청소’를 외치며 거리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성숙된 모습도 보였다.

친구 4명과 응원을 펼친 최민희양(16·인천 서구 백석고 2년)은 “한국이 승리하니 스트레스가 ‘확’ 풀려 다음달 초에 시작하는 기말고사를 잘 치를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날 인천시내에서는 초중학교 56곳이 임시 휴업에 들어갔으며 낮 12시를 기해 단축수업을 실시한 초중학교는 8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남동공단 등 주요 공단과 사무실에서도 낮부터 일손을 놓은 채 한국팀의 승리를 지켜보았다.

주물제조업체인 ㈜한국소재 관계자는 “용광로 가동을 중단하고 직원 모두 응원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인천지점, 롯데마그넷 연수점 직원들은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염원하며 붉은색티셔츠 차림으로 근무했다. 일부 음식점에서는 종업원들이 ‘홍명보’ ‘유상철’ 등의 이름을 새긴 국가대표선수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한편 이날 경기장 내외곽에는 훌리건 전담부대 360명과 경찰특공대 33명 등 총 3200여명의 경비 경찰이 배치되어 경계 활동을 벌었으며 시내 곳곳에서도 교통경찰관들이 밤 늦도록 거리 안내를 했다.

▼태극전사들 숙소 들어서자 투숙객들 일제히 “잘싸웠다”▼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한국 선수단이 세계 5위팀인 포르투갈을 누르고 조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15일 자정경 숙소인 인천 중구 항동1가 오림포스 파라다이스호텔로 들어서자 이 같은 환영 플래카드가 선수들을 맞이했다.

선수단은 방으로 직행했으나 호텔 고객들은 선수단을 향해 축배를 들었다.호텔 1층 펍레스토랑인 ‘지단’에서는 한국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이날 생맥주를 무료로 무제한 공급하면서 승리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필리핀인 악단의 생음악에 맞춰 60여명의 손님들은 환호를 지르며 축배를 들었다. 이곳에 설치된 멀티비전으로 축구경기를 지켜본 고객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술잔을 연거푸 기울였다. 이 레스토랑은 프랑스팀이 투숙한 10일 ‘오픈’하면서 프랑스팀의 스타플레이어인 지네딘 지단의 이름을 따 붙였다. 이곳의 한찬우 지배인(36)은 “인천에서 월드컵 경기 예선전을 치른 6개팀 중 인천에서 숙박한 3개팀이 모두 이 호텔에 묵었다”며 “한국팀이 피날레를 멋있게 장식해 직원 모두 뿌듯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이 호텔에 묵기 시작한 한국 선수단은 외부와의 접촉을 통제한 채 3박4일간의 생활을 하고 있다. 호텔 관계자는 “한국 선수단의 방에는 전화선도 모두 끊어놓았기 때문에 외부와 연락하기 위해 8층 미팅룸에 마련한 인터넷방을 이용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인천〓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전국 응원열기▼

“이겼다, 대한민국!” “이제는 8강이다.”

월드컵축구 한국 대표팀이 48년 만에 역사적인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14일 전국은 밤새 ‘환희의 찬가’로 붉게 달궈진 ‘용광로’가 돼버렸다.

전국 223개소에 설치된 대형전광판 앞에서 열광하던 280여만명의 거리응원단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미리 준비한 축포를 터뜨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사상 첫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국민은 “내친 김에 8강, 4강까지 가자”고 입을 모았다.

주요 도시의 시민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애국가를 합창했으며 대형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내달리기도 하고 승용차 경적을 울리며 밤새 거리를 누볐다.

한국팀에 첫 승을 안겼던 부산은 한국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장외 응원전을 펼치던 17만여명이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1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은 한꺼번에 경기장 주변 거리로 쏟아져 나와 5㎞ 떨어진 서면 도심까지 거리행진을 펼쳤다.

정원이 5만명인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는 무려 9만7000여명의 응원단이 몰려들어 경찰과 시 당국이 바로 옆 사직야구장을 긴급히 열어 이 중 2만7000여명을 이동시키기도 했다.

광주에서는 5000여명이 모인 조선대 노천광장에서 응원하던 시민들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샴페인을 터뜨리며 16강 진출을 축하했고 일부는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도심까지 행진을 벌였다.

울산 문수구장 호반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던 2만여명의 시민들도 경기가 끝나자 일제히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감격해 했다.

울산시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문수구장 호수에 음악분수를 뿜어올리며 ‘물과 불의 축제’라는 축하행사를 열기도 했다.

20여만명이 거리 응원을 펼친 경기도에서도 열광의 도가니였다. 수원시 효원과 서호, 영통중앙공원 및 성남시 분당 중앙공원, 안산시 화랑유원지, 과천시 한국마사회 서울경마공원, 의정부 시청 앞 잔디공원 등 도내 45곳의 야외응원장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환호성이 멈출 줄을 몰랐다.

대구에서 울릉도까지 경북도내 곳곳에서 전광판을 보며 목청껏 장외응원을 벌이던 8만여명의 대구 경북 거리응원단은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미국과 무승부에 그쳤던 대구 경기의 아쉬움을 한순간에 털어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충북 청주시 충북대운동장에 운집한 붉은 악마 회원들과 학생, 시민 등 2만여명의 응원단도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댔으며 48년 만에 숙원을 이룩한 선수들의 이름을 연방 불러댔다.

3만여명의 응원단이 운집한 제주시 탑동광장도 승리를 자축하는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기쁨에 겨워 눈물을 쏟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 여성팬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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