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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10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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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응원 표정▼
너무나 아쉽게 끝난 한판 승부였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골 불운(不運)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애꿎은 하늘만 원망했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은 아쉬움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성숙한 응원문화와 질서의식을 보여줬다.
미국과의 경기가 벌어진 10일, 전국에 붉은 물결이 넘실댔고 온 국민은 하나가 됐다. 서울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굵은 빗방울이 내렸지만 월드컵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함성이 전국을 뒤흔든 하루였다.
이날 전국 81곳에서는 약 100만명의 인파가 경기장 밖에서 단체로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며 한마음으로 한국팀을 응원했다. 서울은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 30여만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10곳에 모두 50여만명이 모여 응원했다.
▽서울 세종로 및 시청 앞〓종로구 세종로 네거리 일대는 시민들이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도로를 가득 메워 넘실대는 ‘붉은 바다’를 연출했다.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경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15만명으로 불어났다.
오후 3시반 경기가 시작되면서 빗방울도 굵어졌지만 시민들은 비옷을 입고 우산을 든 채 ‘대∼한민국’ 등을 외치며 본격 응원전을 펼쳤고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함께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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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00만 한마음 한목소리로… |
8000여평의 시청 앞 광장에는 대형 전광판 3개가 설치됐으며 15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열띤 응원전을 폈다.
후반 33분경 안정환 선수의 헤딩슛이 터진 순간 거리 곳곳에서 “쾅 쾅”하는 축포가 터졌으며 시민들은 서로 옆 사람을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이날 세종로와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근처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넥타이를 맨 채 몰려 나와 87년 6·10 민주화운동 때의 ‘넥타이 시위대’를 연상케 했다.
경찰은 이날 총 53개 중대 6000여명의 경찰관을 이 지역에 배치했지만 우려했던 반미시위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남 여의도 및 상암동 월드컵경기장〓3만여명이 운집한 잠실야구장과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광장에도 붉은 물결이 출렁댔다.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야외무대 앞에도 6만여명의 응원단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시민들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황선홍 선수가 부상으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자 눈시울을 붉히며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옆 평화의 공원에도 3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록밴드의 연주에 맞춰 응원가를 부르며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응원을 위해 이곳에 온 박지숙씨(35·주부)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울먹였다.
이 밖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잠실 한강시민공원 등에도 1만여명의 시민이 응원에 참여하는 등 이날 서울 거리는 응원가와 구호로 떠나갈 듯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한미전 대구표정▼
‘아쉽지만 이제 포르투갈과의 일전을 기약하자!’
월드컵 한국-미국전이 열린 10일 한국팀이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역전골을 터뜨리지 못한 채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대구 달구벌은 일순간 긴 탄식과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금세 ‘태극전사’들이 이날의 불운을 딛고 14일 인천에서 벌어지는 포르투갈전에서 반드시 승리해 16강 진출을 확정지어 줄 것을 당부했다.
○…폴란드를 꺾고 첫 승을 안겨준 ‘부산대첩’의 감격과 환희를 대구에서 이어가기를 기대했던 시민들은 월드컵경기장과 거리에서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으나 무승부로 끝나자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으나 선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과 운이 따르지 않아 비겼다”면서도 “이제 ‘인천대첩’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해 대표팀에 더욱 많은 힘을 실어주자”고 입을 모았다.
이날 대구국채보상기념공원, 두류공원,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대구전시컨벤션센터 등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장외 응원장에는 6만여명의 시민이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태극전사들과 하나가 됐다.
붉은 악마 회원 등 부산시민 1000여명은 정오경 대구월드컵경기장 인근 대구자연과학고에 모인 뒤 경기장까지 필승을 기원하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대구 지역 관공서와 기업들은 대부분 휴무나 조업단축을 실시했고 256개 초중고는 일제히 단축수업이나 휴교를 한 가운데 상당수 학생들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
○…대구월드컵경기장을 온통 붉게 물들인 6만여 관중은 초반부터 열광적인 응원을 하다 미국팀에 선취골을 빼앗기자 ‘아!’하는 탄식을 연발했다. 여기에 이을용 선수의 페널티킥마저 무산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후반 막판 안정환 선수가 동점 헤딩골을 성공시키자 경기장은 열광과 환희의 도가니로 돌변했다.
관중들은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끊임없이 외쳐대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붉은 악마 응원단과 관중, 자원봉사자들은 함께 쓰레기 등을 주운 뒤 경기장을 차례로 빠져나가 높은 질서의식을 보여주었다.
자원봉사자 조선경씨(24·여)는 “경기가 끝난 뒤 관람석 주변에 쓰레기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면서 “응원은 물론 관람질서도 수준급이었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