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여 맘껏 울어라”

  • 입력 2002년 6월 8일 01시 08분



“잉글랜드와의 축구시합은 더 이상 경기가 아니다.”(아르헨티나의 일간지 라 나시온)

그래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충격은 더욱 컸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4차 전쟁’으로 불린 7일의 월드컵 조별 리그 삿포로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순간 아르헨티나 국민은 싸늘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신이 보호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고 했던 한 여행사 대표. “이번 경기는 영국인들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라면서 “축구화 속에서 그들의 발이 떨고 있다”고 비웃었던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이번 경기는 모든 아르헨티나 국민이 기다려온 경기다. 특히 82년에 친구와 가족을 잃은 아르헨티나인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비장하게 말했던 아르헨티나 골키퍼 파블로 카바예로.

줄기차게 두드렸지만 끝내 잉글랜드의 골문이 열리지 않자 모두 할말을 잃었다.

반면 영국인들은 “이제 신의 가호는 우리에게 넘어왔다”고 환호했다.

베컴은 경기 후 “믿을 수 없다”면서 “4년, 정말 길고 긴 4년이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두 나라는 82년 포클랜드전쟁(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전쟁이라고 부른다) 이후 월드컵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10주간 지속된 포클랜드전에서 영국은 승리했다. 이후 두 차례 월드컵 전쟁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두 차례의 승리는 경기 외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포클랜드전 이후 4년 만인 86년에 열린 양팀의 멕시코 월드컵 준준결승에서 마라도나는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1로 아르헨티나가 이긴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공을 손으로 쳐서 첫 골을 기록했고 심판은 이 광경을 보지 못해 골로 인정됐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16강전에서 다시 충돌한 양 팀은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격전 끝에 데이비드 베컴이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했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가 4-3으로 승리했다.

이날 점심시간인 12시반에 경기가 시작된 런던 시내에는 숨죽이던 95분간의 경기가 끝난 것을 알리는 종료휘슬이 울리자 시민들이 뛰쳐나와 “드디어 오랜 원수에 복수했다”고 함성을 질렀다. 마치 소개령을 내린 것처럼 한산했던 시내에는 갑자기 몰려나온 자동차들의 축하 경적이 요란히 울렸다. 66년 이후 36년 만의 첫 아르헨티나전 승리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슬아슬했던 이날 경기에 전율(thrill)마저 느꼈으며 충분히 이길 만했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총리실 대변인이 전했다.

신중한 보도를 원칙으로 삼는 BBC 방송 인터넷판도 ‘달콤한 복수(Sweet Revenge)’라고 전했다.

잉글랜드는 62년 칠레 월드컵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3-1로 물리친 데 이어 66년 잉글랜드 대회 준준결승에서 역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격파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은 퇴장명령을 받았지만 강력히 항의하며 10분간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아 잉글랜드팀을 격분시켰다. 잉글랜드의 알프 람지 감독은 경기 후 전통적인 관례인 유니폼 교환의 거부를 지시했고 기자회견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짐승들’이라고 비난, 사실상 양팀 간의 반목이 시작됐다.

영국에서는 2500만 근로자들 가운데 30%가 이날 휴가 또는 ‘병가’를 내고 경기를 시청한 것으로 추산됐다.

몰래 회사를 빠져나간 직장인들은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온 것을 숨기기 위해 구강청정제를 입 안 가득 뿌렸다.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구강청정제가 25%나 더 팔렸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전통적으로 축구경기에 이길 경우 중심가의 오벨리스크 탑 주변에서 광란의 축하 파티를 열어왔다. 2일 나이지리아를 1-0을 격파했을 때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플라스틱 트럼펫을 불며 환호했다. 언론들은 지난해 12월 경제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에서 ‘6개월 만의 웃음’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숙적 잉글랜드에 대한 승전보를 기대하고 오벨리스크탑 주변에 모인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준비해온 풍선과 트럼펫들을 힘없이 휴지통에 버리며 일터로 향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 김훈래씨는 “시민들이 경기가 끝난 뒤 아예 할 말을 잃어 한동안 시내가 온통 적막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 영국대사관과 영국계 회사를 중심으로 1000여명의 경찰을 배치했으나 폭력이나 소요 사태는 없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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