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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5일 0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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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출렁이더니… 출렁이더니,… 그렇게 물결치더니… 물결치더니….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는 4일 저녁 젊은, 푸른 피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또는 ‘아리랑!’으로 높은 함성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폴란드의 강도 출렁이고 있었다.
한강의 잔물결, 낙동강의 바람도 함께 출렁이고 있었다.
폴란드의 구름도 저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젊은, 푸른 구름 아래서 출렁이고 있었다.
경기장의 푸른 잔디를 내려다보다가, 잔디 위로 구르는 하얀 공과 푸른 다리와 어깨들을 보다가 나는 그 젊은, 푸른 얼굴들의 뒤에서 거친 호흡으로 구름을 내뿜고 있는 숨소리들을 들었다.
‘아아, 코리아… 코리아… 아리랑’… 땅을 흔드는 소리….
그 푸른 얼굴들 뒤로,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얼굴들이 출렁이며 달려온다.
나는 삼국유사의 향가 하나를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젊은이들이 불렀을 향가 하나.
‘간봄 그리매 모든 것사 설이 시름하는데,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네다.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郎)이여, 그릴 마음의 너울 길이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주지하다시피 ‘삼국유사’에는 이러한 향가가 그 배경설화와 함께 14수 실려 있는데 그 중 3수는 누구인가를 사모하고, 또는 흠모하는 시가이다. 위의 시에서의 사모의 대상은 죽지랑이다. 죽지랑은 나중에 김유신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의 4대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던 인물이라고 삼국유사는 쓰고 있다.(위의 향가의 뜻은 지난 봄을 그리며 그 분과 함께 지나던 과거의 아름답던 옛일을 회상하나, 지금은 낭은 없고 낭에 대한 그리움과 시름만 남았다는 뜻)
능연도 있다. 능연은 우리의 남쪽 옛 나라 가야의 한 청년이다. 그는 아주 춤을 잘 추었던 청년이다. 능연도 볼을 찬다. 능연의 현재의 이름은 황선홍인지도 모른다. 아니 유상철일까? 아니 홍명보? 아니 더 많은 우리의 젊은 선수들? 히딩크도?
무수한 젊은 피들이 달린다. 꿈을 날린다.
꿈을 꾸는 이에게 늦음이란 없다. 언제나 꿈은 이른 것이다. 만약 진실로 꿈을 꾼다면….
강은교여, 너도 볼을 차거라. 세계의 하늘을 향하여, 세계의 바람 위로… 우리여 모두 젊은 피가 되어 출렁거리거라.
아직 시간은 늦지 않았다…!
바람은 저 하늘에서 가져오거라. 세계의 하늘에서.
구름은 저 폴란드의 평야에서 가져오거라.
강물은 저 폴란드의 강에서 가져오거라.
별은 저 폴란드의 능연, 올리사데베에게서 가져오거라.
아아, 무수한 목청들 푸른 잔디밭 위에서, 아, 부산 경기장 푸른 바람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pilgrimk141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