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364일 앞으로]한-일 비자면제등 난제 산적

  • 입력 2001년 5월 31일 18시 49분


'한국-일본 양국의 우정과 화합을 과시한 합동응원 모습'
'한국-일본 양국의 우정과 화합을 과시한 합동응원 모습'
96년 5월 31일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가 열린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에 운집한 각국 기자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개최국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집행위원들이 한 사람씩 회의장을 나섰지만 결정의 의외성 때문인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트리나다드토바고의 잭 워너 집행위원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Co-host(공동개최).”

한국과 일본이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워 혈전을 벌였던 월드컵 유치 경쟁의 결론은 월드컵 사상 첫 2개국 공동개최라는 것이었다.

▼글 싣는 순서▼
1. 월드컵 준비의 불안
2. 인프라 구축의 현주소
3. 월드컵 열기와 문화의식
4. 흑자 월드컵의 고민
5. 공동 개최의 문제해결
6. 월드컵 개최 이후

그로부터 5년. 월드컵 공동개최는 오랜 ‘앙숙’인 한국과 일본에 가시적인 큰 영향을 미쳤다. 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 머물러 있던 양국 관계가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문화 분야로 확산됐고 민간 차원의 교류도 지난해 360만명에 이르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됐다.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세 차례 개방했고 일본에서는 한국 관련 서적, 영화,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며 ‘한국 알기’ 붐이 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월드컵 준비 과정 등에서 양국은 팽팽한 갈등과 경쟁을 거듭해 왔다. ‘교과서 왜곡 파문’에 앞서 올 초 터진 ‘월드컵 공식 명칭 한일 국가순 표기’ 문제가 그랬다. 또 84개소의 월드컵 훈련 캠프를 마련한 일본 자치단체가 벌인 출전 예상국 유치 선점 경쟁도 한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입장권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환율 및 물가 차에 따른 줄다리기가 불가피했다. 마스코트 단일화 과정에서도 독자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려는 일본과 진통을 겪었다.

한일 양국 조직위는 그동안 머리를 맞대고 이런 난제를 비교적 수월히 해결해 왔다. 그것은 FIFA와 지금은 파산했지만 FIFA의 마케팅대행사였던 ISL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한일 관계 개선에 큰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비자면제’ 문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이 문제가 공식 논의됐으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일본 외상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 이 문제는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한국 축구팬의 일본 원정 관람은 물론 장기적으로 봇물이 터진 양국 교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일본인에 대해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월드컵 기간 중 한일간 수송 문제도 지난해 말 양국 정부의 항공 회담에서 기존노선 주 38회 증편, 신규노선 주 3회 신설, 하네다공항 심야 시간대 전세편 운항 등에 합의했으나 예측 수요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경기 일정별 개최지간 전세기 임시편 운항 등 좀 더 폭넓은 대책을 일본에 촉구하고 있다.

숙박 시설 한일 연계 문제도 양국 숙박 예약 시스템이 달라 곤란을 겪고 있다. 한국은 FIFA추천 월드컵 숙박전문업체인 바이롬사에서 전담토록 했으나 일본은 주요 호텔 객실을 확보하고 있는 4대 여행사가 키를 쥐고 있다. 해외 관광객이 이중으로 예약을 해야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역시 ‘부국(富國)’ 일본과의 비교. 2002년 한일 양국을 번갈아 오가는 전세계 관람객이 사회 인프라면에서 앞서 있는 일본과 비교해 한국을 어떤 눈으로 보겠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은 최근 “한국은 월드컵 티켓 판매에서도 국가적 수치를 거론하며 일본과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을 보였다”고 보도해 지나친 경쟁 의식이 낳을 부작용에 대해 우려했다.

이덕봉(李德奉·동덕여대 교수) 한국일본학회장은 “망언, 교과서 왜곡, 잘못된 라이벌 의식 등 한일 관계의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양 국민이 정서적으로 접근해 공동 의식을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월드컵 공동 개최가 그 좋은 기회”라며 “지나친 라이벌 의식보다는 한국만의 장점인 ‘정(情)’을 보여줄 수 있는 민박 등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홍보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의 월드컵 준비 상황을 취재한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리차드 월리 기자가 “한국은 일본에 비해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역동성과 정감이 넘쳐흘러 오히려 더 호감이 간다”고 고백한 것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인 듯하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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