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전도사' 선주성씨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04분


지난달 29일 이른 아침 서울 반포대교 인근 한강시민공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주성씨(35) 등 형형색색의 운동복 차림을 한 100여명의 남녀노소 ‘주자’들이 출발선에 몰렸다. 이윽고 ‘땅’하는 출발신호가 울리자 주자들이 힘차게 달려나갔다. 이날 완주코스는 성수대교 아래 한강시민공원까지 갔다오는 10km 구간.

97년 창립된 서울 마라톤클럽(www.seoulmarathon.net) 회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일요일 오전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뜀박질’에 열심이다.

10여명의 회원들로 시작한 친목단체가 매년 수천 명이 참가하는 ‘서울마라톤대회’(매년 3월 중 개최)까지 치를 수 있게 된 데는 선씨의 남다른 ‘마라톤 사랑’이 있었다. “취미로 시작한 마라톤이 제 인생의 전부가 된 셈이죠.” 주위에선 마라톤에 빠져 올 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전업한 그를 ‘마라톤 골수 중독자’라고 부른다. 이후 선씨는 각종 마라톤대회의 자원봉사자나 진행요원으로, 마라톤 칼럼니스트로 바쁘게 활동해왔다.

그가 ‘달리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92년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공군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무척 힘들었던 혹독한 구보훈련이 어느 순간부터 즐거워졌죠. 이후 틈만 나면 ‘미친놈’이라는 핀잔을 들어가며 연병장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95년 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이 때 4시간의 ‘사투’ 끝에 결승점을 밟는데 성공한 그는 지금까지 각종 대회에 참가, 15차례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뉴욕국제마라톤을 비롯해 보스턴, 호놀룰루 등 세계대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죠. 거리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인파가 보내주던 격려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는 요즘 자신이 번역한 한 권의 책 덕분에 ‘유명인사’가 됐다. 독일의 현직 부총리이자 외무장관인 요슈카 피셔(52)의 자전적 달리기 체험집인 ‘나는 달린다’(궁리)가 바로 그 것. 무절제한 생활로 112㎏의 ‘뚱보’가 돼 아내와의 이혼, 지병악화 등 파멸의 문턱에서 달리기를 시작해 1년 만에 75㎏의 날씬한 몸매를 되찾고 새 삶을 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요즘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때마침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방한 중인 피셔 장관과 그는 ‘저자’와 ‘역자’로 함께 1일 오후 남산순환도로 10km 구간을 함께 뛰며 서로의 마라톤 사랑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날 만남은 피셔 장관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그가 독일대사관측에 제의해 이뤄졌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피셔 장관이야말로 나 못지 않은 ‘마라톤광’”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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