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해태 2군포수 김지영『연습만이 생존의 길』

  • 입력 1998년 1월 10일 20시 40분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 숙소를 나서기가 싫다. 그래도 가야지. 멀리 2군 동료들이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광주종합운동장으로 모여드는 걸 보니 스산함이 덜하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시간. 모두들 눈빛이 달라진다. 올해는 꼭 김응룡 감독님 눈에 들겠다는 각오이리라. 지난해말 12명의 목이 날아갔다. 연습은 곧 ‘생존’이다. 내가 호랑이띠니까 호랑이해인 올해 진짜 떠야 하는데…. 왜 불안감이 앞설까. 목포 영흥고를 졸업한 93년에 입단했으니 벌써 6년생. 하지만 지난해까지 1군에서 뛴 건 49경기. 타율 0.269니 부끄러운 성적이다. 동기생 이대진은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한양대를 졸업한 동기 김창희도 거포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동안 난 뭘 했나. 지난해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9월초 방출 통보를 받고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서야 하나’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짐만 싸둔 채 숙소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까. 갑자기 감독님의 호출을 받았다. ‘한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19일 인천 현대전에서 권오성 선배가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들리는 부상을 했다. 권오성 형도 최해식 선배가 왼손 등 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대신 마스크를 썼으니 성한 포수가 한 명도 없었다. 20일 광주 쌍방울전. 마스크를 쓰자 두려웠다. 오히려 후배 김상진이 “형, 긴장 풀어요”라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4타수 3안타에 도루를 두 번이나 잡아냈다. 김감독님이 눈을 찡긋해줄 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는 내 세상이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해식 권오성 선배 모두가 컨디션을 되찾았다. 선배들의 불행에 내 운명을 걸어둘 수는 없다. ‘준비된 포수’로 거듭나야만 한다. 신영균 2군 감독님과 장채근 코치 모두 “실력은 완벽해. 경험만 더 쌓으면 될 거야”라고 격려해 주신다.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2군 선수가 줄어 청백군으로 나눠 연습경기 하기도 빠듯하다. 지난해 ‘잘린’ 추평호 형이 어젯밤 전화에서 한 말이 아른거린다. “올해가 끝이라는 각오로 덤벼봐!” 〈정리·광주〓김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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