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의 얼굴엔 거의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남자농구가 28년만에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을 되찾았던 20일. 우승의 기쁨에 겨워하는 선수들과 그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평소 감정표현에 서툰 그였지만 그날은 유달랐다.
한국남자농구대표팀 정광석감독(52). 그는 왜 그랬을까.
『결승전 종료부저 소리가 울리는 순간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대표팀을 맡아 한번도 우승하지못한 나에게 쏟아졌던 손가락질, 소속팀에서의 찬밥신세, 걱정어린 가족들의 얼굴들…. 제19회 아시아선수권대회는 나에겐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습니다』
선수단을 이끌고 이번 대회 격전지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기 직전 그는 회사로 불려갔다. 프로농구 현대다이냇 총감독직을 내놓고 고문으로 물러앉으라는 것.
고문은 1년짜리 시한부 직책. 지난 81년 아마추어팀인 현대전자 코치로 부임한 이래 17년동안 외길만을 달려온 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차마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채 출국했다. 그리고 제19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농구생명」을 걸었다. 현주엽이 돌연한 부상으로 빠지고 서장훈마저 귀를 다쳐 거의 뛰지 못했던 이번 대회. 주무는 커녕 팀닥터도 동행하지 않아 다친 선수들이 일본의 팀닥터에게 구걸하듯 침을 맞아야했던 최악의 조건이었기에 한국의 우승은 더욱 빛났다.
『아직 현역 지도자 생활을 마감하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농구 우승도 하고 싶고, 또 더 배우고 싶습니다』
한국남자농구 르네상스를 일궈내며 「명장」 반열에 오른 정감독. 그는 다시 지휘봉을 잡고 싶다.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