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승 박찬호 인생역정]전파사집 아들의 신화『창조』

  • 입력 1997년 8월 1일 20시 21분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자만이 인생의 참 의미를 안다」는 말이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 4년만에 꿈의 10승 고지를 밟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24·LA다저스)가 바로 그렇다. 지난 94년 미국 프로야구 사상 17번째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그는 불과 18일만에 마이너리그로 추락, 꼬박 2년 동안 눈물 젖은 빵을 씹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던 마이너리그 2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지난해. 그는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5승을 따냈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올시즌 차곡차곡 10승을 쌓아올렸다. 충남 공주에서 전파사집 아들로 태어나 공주중 고를 거쳐 지난 92년 한양대에 입학할 때까지 그는 그저 빠른 볼을 지닌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임선동(LG) 박재홍(현대) 조성민(요미우리) 등 동기생들이 수억원대의 계약금을 든 연고구단으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을 때 한화는 그에게 5천만원의 계약금을 제시했을 뿐이었다. 기회가 찾아 온 것은 한양대 2학년 때인 93년 7월. 미국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중 그는 다저스의 테리 레이놀즈 스카우트 부장과 만나 체력 측정 등 입단을 위한 기본 테스트를 받았다. 다저스는 지난 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미―일 친선 고교야구대회 당시 시속 95마일(1백53㎞)을 넘나드는 빠른 볼을 지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터였다. 93년 10월 다저스의 피터 오말리 구단주 일행이 한국을 찾아와 극비리에 한양대와 접촉, 박찬호의 정밀 신체검사를 마친 뒤 돌아갔고 이듬해 1월12일 박찬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계약금 1백20만달러(약10억8천만원)에 다저스와 정식계약을 맺었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기쁨도 잠시, 시작은 참담하기만 했다. 불과 2경기에서 4이닝 동안 5실점, 방어율 11.25로 18일만에 마이너리그 더블A팀인 샌안토니오로 쫓겨났다. 자신에 대한 실망에다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보다 깊은 고독이 엄습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 앨버커키 듀크스 시절 박찬호는 왼쪽 다리를 머리 위까지 치켜올리던 투구 패턴을 현재의 모습으로 바꿔준 후튼 투수 코치를 만난 뒤 고질적인 제구력 난조를 극복했고 이듬해 3월31일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해 4월7일 박찬호는 「약속의 땅」 시카고 리글리필드 구장에서 감격의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냈다. 선발 마르티네스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대신 투입돼 얻어낸 감격의 승리였다. 지난해 48경기에서 5승5패 방어율 3.64로 시즌을 마감한 박찬호는 이 해 겨울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40이닝 동안 방어율 1.35의 빼어난 투구를 선보인 뒤 올시즌 다저스의 5인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1일 메이저리그 진출 3년6개월만에 마침내 시즌 10승 고지를 정복했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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