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원에 휘둘리는 사회]
소모적 민원폭탄에 공익제안 밀려
“AI 활용 비속어-유사내용 걸러내야”
억지 요구를 반복하거나 폭언을 일삼는 악성 민원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지만, 일상 속 위험을 예방하고 행정 제도를 개선하는 ‘공익 민원’도 적지 않다. 정당한 시민의 제안이 소모적인 ‘민원 폭탄’에 사장되지 않도록, 접수 단계부터 옥석을 가릴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널목 신호 고장 신고로 대형 사고를 막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3월 한 시민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안전신문고를 통해 “성북구 길음동 건널목의 바닥 신호등이 고장 났다”고 당국에 알렸다. 현장 점검 결과 건널목 신호가 빨간불일 때도 바닥 신호는 초록불로 잘못 표시되고 있었다. 유동 인구와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라서, 스마트폰을 보며 대기하던 보행자가 바닥 신호만 믿고 도로로 발을 내디딜 위험이 큰 상황이었다. 성북구는 신속히 신호등을 정비해 인명 피해를 예방했다.
평범한 제안이 공공 서비스 혁신을 이끌기도 한다. 현재 서울 지하철 객실 내 모니터에 도착역과 목적지가 상시 표출되는 것 역시 한 시민의 민원에서 출발했다. 이 시민은 “안내 화면에서 현재 위치와 운행 정보를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고 민원을 제기했고, 서울시는 이를 수용해 지난해 서울교통공사 소속 지하철 1184칸의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문제는 정당한 공익 제안이 극소수의 무분별한 악성 반복 민원에 밀려 처리가 지연되거나 사장된다는 점이다. 목적 불명의 반복 민원 처리에 행정력이 과다 투입되면서, 정작 긴급하고 공공성이 높은 민원에 대응할 물리적 여력이 부족해지는 구조다.
정부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2월부터 국토교통부와 인천시, 경기 시흥시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빈발·중복 민원 일괄 처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민원을 AI가 자동 선별해 한번에 처리하도록 묶어주는 시스템으로, 떼쓰기식 집단 반복 민원 처리에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려는 조치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악성 민원 자체를 식별하는 사전 필터링 단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김세진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민간기업은 상담 시 AI로 욕설이나 비속어를 선별해 제거하고 있다”며 “공공기관도 악성 표현이나 반복 민원의 패턴을 분석해 접수 단계에서부터 필터링하는 AI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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