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채, 플랫폼 옥죄자 텔레그램으로… 피해자 36% “SNS 접촉”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4일 04시 30분


[SNS로 숨어드는 불법사금융]
정부, 중개 플랫폼 단속 강화하자 SNS로 조직 거점 옮겨 불법영업
연이율 5200% 내걸고 악질적 추심
계약때 받은 지인 연락처로 협박도
“불법사채 연루계좌도 즉시 동결을”

한준영(가명·32) 씨는 지난해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출 광고를 보고 ‘이 실장’이라는 업자에게 연락해 10만 원을 빌렸다. 그런데 이 실장은 일주일이 지나자 연체료 등을 명목으로 43만 원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돈을 빌려줄 때 한 씨로부터 받았던 가족과 지인의 연락처로 ‘한준영이 돈 안 갚고 도망갔다. 너희들 개인정보도 팔아넘겼다’는 문자를 뿌렸고, 한 씨에게는 텔레그램으로 “네 동네에 얼굴 사진으로 만든 현수막 걸어야겠다”며 압박했다. 취재팀이 접촉한 이 실장의 피해자 5명 중 2명은 SNS에 올라온 대출 광고를 보고 이 실장을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명도 전화가 아닌 텔레그램 등 SNS로 추심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지난해 대부 중개 플랫폼을 불법사채 조직의 주요 활동지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자, 조직들이 SNS로 거점을 옮겨 피해자를 접촉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연 이율 60%가 넘는 불법 사채는 원금조차 갚지 않아도 되도록 계약을 무효화하는 강력한 대책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인을 향한 가혹한 추심 탓에 실제 구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중개 플랫폼서 SNS로 옮겨간 사채의 덫

지난해 7월 마련된 개정 대부업법의 핵심은 대부 중개 플랫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추심 등에 사용된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불법사채 계약은 주로 피해자가 대부 중개 플랫폼에 등록된 합법 대부업체에 전화하면 연락처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어가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불법사채 조직은 단속을 무력화하기 위해 중개 플랫폼이 아닌 SNS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SNS에선 계정이 정지돼도 새 계정으로 추적을 피할 수 있고, 해외 플랫폼은 정부가 자율규제 협조를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3일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하는 경기복지재단은 올 1분기(1∼3월)에 접수된 피해자 380명 중 138명(36.3%)이 SNS를 통해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밝혔다. 대부 중개 플랫폼(13.2%)이나 문자 광고(9.5%), 포털 사이트(8.7%)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치다.

실제로 취재팀이 이 실장 피해자 5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SNS를 통해 불법 계약과 추심의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도훈(가명·28) 씨는 “일용직 근로자였고 당장 계좌가 막힐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SNS 광고를 보고 이 실장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이 실장 조직과 관련한 피해가 총 60건 넘게 접수되자 집중 수사에 착수했고, 금융감독원도 소비자 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3일 SNS에서는 ‘쉬운 대출’ 등을 내건 광고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취재팀이 그중 한 업자를 접촉해보니 ‘10만 원 차용 시 일주일 후 19만 원 상환’ 등을 적은 이자 표를 텔레그램으로 안내해왔다. 연이율로는 약 5200%로, 법정 최고금리(20%)의 260배에 달하는 불법사채다. 정부는 이런 불법사채 광고를 발견할 때마다 차단을 요청하고 있지만, 해외 플랫폼은 협조가 더딘 상황이다.

● ‘고금리 무효’도 지인 협박 앞에선 무력

금감원은 개정 대부업법에 따라 연 이율 60% 이상의 초고금리 계약에 대해선 올 3월부터 ‘대부계약 무효확인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하지만 제도 시행 한 달 동안 접수된 400건 가운데 실제 확인서 발급으로 이어진 사례는 88건에 불과했다. 특히 173건은 피해자가 스스로 신청을 철회하거나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인에 대한 악질적 추심이다. 불법사채 조직은 대출 계약 시 요구한 지인 연락처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 실장 조직의 피해자인 박진욱(가명·24) 씨는 “계약이 무효가 돼도 지인들이 피해를 볼까 봐 빚을 모두 갚았다”고 토로했다. 다른 30대 중반 피해자는 “경찰과 금감원에 신고했다고 알렸더니 ‘(지인) 100명에게 협박 메시지를 뿌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불법사채 피해 782건 중 사채 조직으로부터 계약 무효를 확인받은 ‘채무종결 합의’는 267건(21.7%)에 그쳤다.

피해 구제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유민희(가명·36) 씨는 “연이율 60% 초과 계약이 무효라는 건 몰랐다”며 “원금을 못 갚았다는 이유로 계속 독촉해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추심을 원천 차단할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진흥 한국TI인권시민연대 불법사채대응센터장은 “피해 신고 시 연루 계좌를 즉시 동결하는 대상 범죄를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불법사채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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