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박 자진신고제’ 첫 도입한 대전경찰청, 1년간 109명 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5일 15시 09분


대전경찰청 전경. 대전경찰청 제공
대전경찰청 전경. 대전경찰청 제공
대전에 사는 학교 밖 청소년 A 군(18)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며 집에만 머물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우연히 온라인 도박을 접했다. 처음엔 소액으로 시작했지만 부모의 스마트폰 은행 앱을 이용해 돈을 빼 쓰는 등 1년 4개월 동안 2000만 원가량을 모두 잃었다. 처벌이 두려웠던 A 군은 결국 부모와 함께 대전경찰청에 자진 신고했고, 경찰과 유관기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올해 4월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도박을 시작한 B 군(17)도 처음엔 ‘재미 삼아’였다. 하지만 5만 원으로 시작한 배팅 금액은 300만~400만 원까지 불어났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자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심한 중독 증세를 느낀 그는 경찰에 자진 신고했고, 전문상담과 교화 과정을 거쳐 현재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전국 최초 청소년 ‘사이버 도박 자진신고제’ 도입

청소년 도박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는 가운데 대전경찰청이 지난해 전국 최초로 청소년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신고할 수 있는 ‘도박 자진신고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운영된 이 제도에는 총 109건이 접수됐다. 중학생이 80명, 고등학생이 29명이며 여학생 5명도 포함됐다. 사용된 금액은 최소 1만 원에서 최대 9000만 원에 달했다.

자진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보호자와 함께 면담을 진행하고, 필요시 즉시 출동 상담을 시행한다. 이후 전문가들이 개입해 치료·교화 프로그램을 연계한다. 경찰은 도박사이트, 금액, 시작 경위 등을 파악해 사이버수사대에서 수사하거나 사건 규모에 따라 검찰로 송치한다.

선도심사위원회를 통한 훈방이나 즉결심판 조치도 병행된다. 금액이 커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경우엔 검찰로 넘겨지지만, 대전경찰청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소년은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6명이 검찰에 송치돼 4명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촉법소년 12명은 대전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40명은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돼 경미한 처분을 받았으며, 도박 횟수가 적은 7명은 입건 없이 전문기관에 연계됐다. 현재 44명은 상담 및 경찰 면담이 진행 중이다.

● 경찰 개입으로 ‘실효성’ 확보

기존에도 학교전담경찰관(SPO)이 청소년 도박 예방을 위한 상담을 진행했지만, 실제 신고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단순 예방교육이나 계도 활동에 그쳤다. 이번 자진신고제는 대전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유혜미 경사의 현장 경험에서 비롯됐다. 유 경사는 “불법도박으로 입건되는 청소년들의 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며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경찰이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승희 대전·충남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그동안 예방 중심의 계도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경찰이 개입하면서 신뢰와 통제 장치가 생기자 실제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처벌의 두려움이 사라지면 청소년이 스스로 신고할 수 있고, 그만큼 치료 동기와 효과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대전경찰청의 사례가 알려지자 경기남부청, 세종청, 천안서북서, 익산서 등 여러 기관이 벤치마킹에 나섰고, 충북경찰청과 육군본부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 예방교육 강화와 제도 보완 필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실태조사(2024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약 390만 명 중 4.3%(17만 명)가 한 번 이상 도박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대부분은 친구 권유나 온라인 광고를 통해 도박을 접한다.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지역 청소년 도박 사범은 2022년 2명, 2023년 12명에서 지난해 181명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도박이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실효성 있는 예방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 센터장은 “각 교육청이 도박예방 교육을 운영하고 있지만, 교육부 지정 필수교육이 아니라 참여율이 낮다”며 “예방 강사 양성, 예산 확대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도박에 빠지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현행 촉법소년 기준으로는 경찰의 개입이 제한적이다”며 “법 개정과 함께 조기 발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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