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헬기로… 가을 산 ‘조난 구조’ 골든타임 사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가을 산을 지키는 사람들
산속 낙상 조난자 30분 만에 구조… 119특수대응단, 헬기-드론 총동원
단풍철 등산객 몰리며 산악사고↑… 강한 바람-시야 확보 등 변수 있어
헬기 접근 어려울 땐 ‘지상 구조대’… 세금 들여 구조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선 수억 비용 전액 본인 부담… 무리한 산행 말고 경각심 가져야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119특수대응단 헬기 계류장. 구조대원들이 가평군 명지산에서 사고를 당한 등산객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한 뒤 복귀하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119특수대응단 헬기 계류장. 구조대원들이 가평군 명지산에서 사고를 당한 등산객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한 뒤 복귀하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단풍철 인파 ‘비상’… 산악 구조대 24시

단풍철 등산 인파가 몰리며 산악 구조대의 하루도 쉴 틈이 없다. 깊은 계곡과 절벽, 헬기가 닿지 않는 곳까지. 하늘과 산속 험로를 누비며 조난객들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경기도119특수대응단 대원들과 동행했다.

“가평 명지산 정상, 산악구조. 출동 준비!”

지난달 29일 오후 1시 58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119특수대응단 상황실에 다급한 방송이 울렸다. 대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움직였다. 가평 명지산(해발 1252m) 정상 부근에서 여성이 산행 중 낙상해 거동이 어렵다는 신고였다. 곧이어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한다”는 추가 무전이 들려왔다.

대원들은 재빨리 장비를 챙겨 헬기에 올랐다. 조종사를 포함해 5명이 탑승한 헬기는 10분 만인 오후 2시 8분, 굉음과 함께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았다. 지상 구조대가 걸어서 오르면 서너 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헬기는 30분 만에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산자락 어딘가에 주황색 점이 보였다. 구조 헬기를 향해 웃옷을 흔드는 조난자였다. 구조대원들이 로프로 하강해 여성을 인양했고, 헬기는 여성을 병원으로 이송한 뒤 1시간 20분 만에 복귀했다. 대원들은 한층 가벼운 표정으로 “구조 성공!”을 외쳤다.》




● 하늘 위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

경기도119특수대응단 항공팀의 임무는 하늘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이들이 타는 헬기는 해발 수백 m,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벽과 협곡으로 향한다. 지난해에만 814차례 출동해 496명을 구했다. 내부에는 산악 전용 들것 ‘에베레스트 스트레처’, 응급의료 키트, 심지어 임산부용 분만 키트까지 갖췄다. 하늘 위 병상인 셈이다.

가을은 구조 요청이 가장 많은 계절이다. 단풍철 등산객이 몰리면서 산악사고도 급증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악사고 1만134건 중 가을인 9∼11월에 3205건(31.6%)이 발생해 가장 많았다. 유형별로는 실족이 31.9%로 가장 많았고 길 잃음(28.7%), 개인 질환(9.6%) 순이었다.

이강화 기장은 군에서부터 27년간 헬기를 몰아온 베테랑이다. 수백 번의 구조 임무를 수행했지만 “매번 긴장된다”고 했다. 그는 구조를 “물이 가득 찬 유리컵 같다”고 표현했다. “한 방울만 떨어져도 넘칩니다. 그만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요.”

6월 22일 경기 안양시 삼성산에서 경기도119특수대응단 대원들이 다친 등산객을 들것에 태워 헬기로 인양하고 있다. 경기도119특수대응단 제공
6월 22일 경기 안양시 삼성산에서 경기도119특수대응단 대원들이 다친 등산객을 들것에 태워 헬기로 인양하고 있다. 경기도119특수대응단 제공
헬기는 속도와 고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날씨만큼은 통제할 수 없다. 바람이 산 정상의 태극기를 곧게 세울 만큼 강한 날이면, 헬기가 순식간에 수십 m 솟아올랐다가 고꾸라지기 일쑤다.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리면 조난자를 찾기도 어렵다. 야간에는 조종사 시야가 평소의 3분의 1로 줄어든다. 설상가상으로 밤중 등산로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면 구조 신호와 구분되지 않는다. 이 기장은 “자연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을 산행 중 헬기를 보면 손수건이나 스틱을 흔드는 등산객도 많다. 이 기장은 “반가운 마음에 그러시겠지만, 구조 신호로 착각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지만, 그만큼 현장은 한순간의 오해조차 긴박하다.

● 헬기가 닿지 않는 곳, 두 발로 가는 구조대

지난달 29일 오전 의정부시 천보산에서 경기도북부119특수대응단이 모의 산악구조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인명 구조견 ‘태공’이 조난자를 수색하고 있다. 의정부=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지난달 29일 오전 의정부시 천보산에서 경기도북부119특수대응단이 모의 산악구조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인명 구조견 ‘태공’이 조난자를 수색하고 있다. 의정부=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선 지상 구조대가 뛴다. 지난달 29일 오전 의정부시 천보산에서는 경기도북부119특수대응단의 모의 산악구조 훈련이 한창이었다. 산 중턱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가 “살려 달라, 위치를 모르겠다”고 신고하자 지휘 차량 모니터에 ‘지능형수색지원시스템’ 화면이 떠올랐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과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가 협력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통신이 잘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휴대전화 기지국 전파를 분석해 조난자의 위치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

예상 지점이 표시되자 수색팀은 열화상 드론을 띄우고, 인명구조견 ‘태공’과 함께 빠르게 산을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태공이 조난자를 발견해 짖기 시작했다. 6명의 구조대원이 양쪽에서 접근해 조난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부축해 하산시켰다.

지상 구조대는 사람의 두 발로 ‘골든타임’을 붙잡는 팀이다. 15kg가량의 장비를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환자가 산 중턱에 있으면 헬기가 닿는 지점까지 들것으로 이송하고, 협곡에 떨어진 사고자는 로프를 걸어 끌어올린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불어난 계곡에 고립된 사람도 직접 구한다. 곽용현 소방장은 “누군가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며 “위기의 연속이지만, 결국 누군가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뛴다”고 말했다.

● “119가 올 거라 믿고 버텼어요”

대원들이 험한 산속으로 향하는 이유는 ‘생명을 구한다’는 보람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고양시 북한산 의상봉 절벽에서 한 60대 여성이 안전장비 없이 암벽을 오르다 고립됐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절벽이었다. 조난자는 신발이 벗겨지고 가방이 떨어진 채 1시간 넘게 매달려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헬기의 호이스트(권양기)를 타고 내려가 여성을 안아 올렸다.

당시 출동한 천광진 경기도119특수대응단 특수구조팀 소방장은 “헬기 하강풍으로 로프가 흔들려 조금만 실수해도 2차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럼에도 조난자가 ‘119가 올 거라 믿고 버텼다’고 말해 뭉클했다”고 회상했다. 그날 신입으로 함께 출동했던 이형규 소방장은 입단 2년 차가 됐다. 이제는 3층 건물 높이의 호이스트 훈련장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이날 11m 높이에서 구조대원들의 훈련을 돕던 그는 “사람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높이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며 웃었다.

김정현 기장은 해군 조종사로 20년을 복무하다 2018년부터 구조 헬기를 조종하고 있다. 그가 처음 맡은 새벽 응급환자 이송 임무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새벽 2시, 서울 야경 위로 우리 소방헬기만 떠 있었어요. ‘내가 한 생명을 살렸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군 생활 내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그 순간이 지금도 가장 뿌듯합니다.”

●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 말고 조심하세요”

지난달 29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119특수대응단에서 구조 대원들이 헬기 호이스트(권양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29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경기도119특수대응단에서 구조 대원들이 헬기 호이스트(권양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해외에서는 무리한 산행의 대가가 훨씬 크다. 미국 일부 주(州)에서는 통제구역에서 조난했다가 구조될 경우, 구조 비용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헬기와 인력 투입 비용이 합쳐지면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한국은 구조 활동이 전액 세금으로 이뤄져 부주의로 사고를 내도 개인에게 비용이 청구되지 않는다. 구조대원들은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공동의 안전망으로 운영되는 만큼, 책임 있는 산행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수구조단 대원들은 구조 기술만큼 중요한 게 ‘사고를 미리 막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악사고 대부분은 적절한 장비를 착용하지 않거나 무리한 코스를 선택하고 기상 악화에도 강행하는 등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이 기장은 “슬리퍼를 신고 암벽을 오르다 오도 가도 못하거나, 혼자 산에 올라 심정지로 쓰러지는 경우도 많다”며 “사람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순간, 구조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음주 후 산에 오르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곽 소방장은 “비등산로로 버섯이나 약초를 캐러 들어가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며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하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률 경기도북부119특수대응단 소방교는 “요즘은 날씨가 좋아 등산객이 몰리고, 낙엽이 쌓인 등산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도 잦다”며 “무리한 일정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택하고, 하산이 늦어지면 즉시 119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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