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3년만에야 첫 공식 추모행사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개최한 첫 공식 추모행사인 이날 기억식에는 유가족 등 1000여 명이 모였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혼자 있는데 사건이 동시에 터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대응이 마비되는 겁니다.”
27일 밤 서울 시내 한 구청 재난안전상황실. 대형 화면 속 실시간 상황 보고와 구급 출동 리스트를 번갈아 확인하던 공무원 A 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이날 야간 근무를 혼자 서고 있었다.
근무는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이곳에선 주간 근무 시간을 제하고 야간과 주말에는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기자가 함께 있는 동안 그는 폐쇄회로(CC)TV를 주시하며 특이사항을 보고하고, 민원실로 접수되는 신고를 확인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그는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식사는 앉은자리에서 간식으로 해결하고, 화장실도 무전기를 들고 뛰어 다녀온다”고 말했다.
● 주말 밤 내내 한 명 근무… 재난 대응 ‘구멍’ 여전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가 서울시 자치구 재난안전상황실 인력 확충 방침을 내세웠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7일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0곳(80%)의 재난안전상황실 운영 인력이 권고 기준 미달인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권고 기준은 8명 이상이다. 주간·야간(오후 9시∼오전 9시) 풀타임 근무와 통신대기, 휴무 등 ‘2인 1조-4교대 체계’를 유지해 재난 시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로 권고 기준을 충족한 곳은 5곳뿐이었다. 11곳은 6명 미만이었으며, 이 중 9곳은 권고 기준의 절반 수준인 4명으로 상황실을 운영 중이었다. 인파가 몰리는 성수·명동을 관할하는 성동구(4명)와 중구(5명), 젊은 층 유동인구가 많은 건국대 인근 광진구(4명) 등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면 야간과 주말에 1명이 근무를 서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형 행사나 인파가 몰리는 시기에 안전사고 대응이 취약해지는 셈이다. 기준 인원에 못 미친 한 자치구 관계자는 “모니터를 지켜보며 신고 접수, 유관기관 통보까지 모두 해야 한다”며 “밤새 ‘멀티플레이어’로 일해야 하는데 나흘에 한 번씩 이런 근무를 한다는 건 사실상 체력 한계”라고 토로했다. 이태원 참사 때도 용산 상황실 근무 인력이 다른 일을 하느라 전화를 받고도 대응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 3년간 지속 권고에도 인력 충원 ‘제자리’
행안부는 이태원 참사 이듬해인 2023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전국 지자체에 인력 충원을 권고했다. 공문에는 ‘재난 발생 빈도와 대응 수요를 고려할 때 원활한 상시 운영을 위해 2인 1조 4교대 체계(총 8명 이상)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실제 충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자치구 관계자는 “행안부가 지속적으로 인력 확충을 권고했지만, 자치구 예산 사정상 권고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재난상황실은 재난 발생 시 현장 대응을 조율하는 ‘두뇌’ 역할을 한다”며 “이곳의 인력이 부족하면 재난 대응 체계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산 지원과 인력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9일 오전 10시 29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광장에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3주기를 맞아 정부의 첫 공식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와 행안부가 공동 주최한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은 서울 전역에 울린 1분간의 추모 사이렌과 함께 시작됐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상징색인 보라색 재킷 등을 입고 애도의 뜻을 전했고, 300여 명의 국내외 유가족을 비롯해 주최 측 추산 1000여 명이 모였다. 서울경찰청은 핼러윈 기간을 앞두고 이태원을 포함한 33개 인파 밀집 지역의 안전관리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