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형 싱크홀 원인 ‘지하공사’ 최다인데…누수만 잡는 지자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2일 16시 47분


싱크홀 전체로는 상하수도 누수 원인이 절반이지만
‘사람 잡는’ 대형 싱크홀만 따지면 지하공사가 많아
지자체 대책 ‘노후 수도관’에 집중…사고 방지 한계

16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복선전철 5-2공구 붕괴 현장. 2025.4.16 뉴스1
16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복선전철 5-2공구 붕괴 현장. 2025.4.16 뉴스1
11일 경기 광명시에서 발생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는 신안산선 공사 중 터널이 붕괴하면서 발생했다. 길이 30m, 깊이 10m에 달하는 초대형 싱크홀이 생기면서 공사장 근로자 1명이 숨졌다. 지난달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숨진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지름 20m 규모 싱크홀 사고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으로 지하철 9호선 연장 터널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싱크홀 사고 원인을 살펴보니 최근 10년간 발생한 사고 대부분 지하 공사가 원인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를 통틀어 상하수도관 누수 탓이 많다는 이유로 누수 감지 대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매년 전국에서 100건이 넘는 싱크홀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사고 규모에 따라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춘 ‘선택과 집중’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초대형 싱크홀 원인 중 수도관 누수 ‘0건’

31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 현장이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지반침하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구성·운영하며 사조위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4기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단(2025년1월~2026년12월 62명) 소속 전문가로 구성했다. 사조위는 이날부터 오는 5월30일까지 2개월간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2025.03.31 뉴시스
31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 현장이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지반침하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구성·운영하며 사조위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4기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단(2025년1월~2026년12월 62명) 소속 전문가로 구성했다. 사조위는 이날부터 오는 5월30일까지 2개월간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2025.03.31 뉴시스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에 싱크홀 발생 내용을 상세히 신고해야 한다. 이 정보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2016년 12월부터 이달까지의 싱크홀 사고 전수(1422건) 정보를 확보해 22일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사고의 51.4%(732건)는 상하수도관 누수 탓으로 나타났다. 이어 굴착·매설·되메우기 불량 등 지하 공사 부실이 36.5%(520건), 원인 불명 등 기타는 11.9%(171건)였다.

하지만 깊이 5m 이상의 대형 싱크홀 35건을 따로 분석해 보니 양상이 달랐다. 지하 공사 부실이 15건(42.9%)으로 가장 많았고, 상하수도관 손상은 8건(22.9%)에 불과했다. 나머지 12건(34.3%)은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기타다. 특히 깊이 10m를 넘는 초대형 싱크홀의 경우, 원인이 상하수도 누수였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올해 인명 사고가 발생한 강동구와 광명시의 싱크홀 모두 깊이 10m 이상의 초대형 싱크홀이었다.

실제 대형 싱크홀 사고 사례를 보면 대부분 공사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2020년 8월 경기 구리시에서 발생한 깊이 21m 싱크홀은 지하철 8호선 별내선 굴착 공사와 연관돼 있었다. 2022년 8월 강원 양양군에서 편의점 건물이 통째로 함몰된 깊이 18m 규모의 싱크홀도 인근 생활형 숙박시설 공사가 원인이었다.

● “노후 수도관 탓” 2m 깊이 조사만

26일 오전 서울 강동구 싱크홀(땅 꺼짐)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복구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25.03.26 뉴시스
26일 오전 서울 강동구 싱크홀(땅 꺼짐)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복구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25.03.26 뉴시스
그러나 지자체 대책은 대부분 노후 수도관 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를 모두 합치면 상하수도관 누수가 원인인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2일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 지역 싱크홀의 80~90%는 노후 하수관거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8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차량이 도로에 빠져 80대 운전자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 지반침하 사고의 64%가 상하수관로 때문”이라며 내시경 카메라 등을 활용한 관로 조사 및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에서도 서울시 재난안전실장은 “지반침하 원인의 50%가 노후 하수도”라며 “향후 3~5년간 하수도 개량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강동구 사고 이후에도 서울시는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핵심 대책으로 내세웠다. GPR은 전자기파를 이용해 지표면 아래의 구조물을 탐지하는 장비로, 지하의 빈 공간이나 매설물 위치를 확인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탐지 가능한 최대 깊이가 2m 전후에 불과하다. 상하수도관이 주로 깊이 3m 이내에 매설되기 때문에 사실상 누수 감지를 위한 대책인 셈이다.

● ‘평균의 함정’ 빠져… “지하 공사 안전 대책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응이 ‘평균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상하수도 누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수십 cm 깊이의 작은 싱크홀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처럼 극단값을 무시한 채 전체 평균만 보고 판단하면 실제 위험성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는 취지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수도관 누수로 인한 지반침하는 자동차 바퀴가 빠지는 정도의 작은 땅꺼짐에 그친다”며 “대규모 사례 위주로 분석해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도 “하수도관이 이미 발생한 싱크홀 규모를 키울 수는 있으나 대규모 싱크홀의 ‘방아쇠’가 될 리는 전혀 없다”며 “대규모 싱크홀 중심으로 다시 대책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싱크홀 원인을 깊이와 위험도에 따라 재분류하고, 특히 대형 사고부터 우선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년 100건이 넘는 싱크홀이 발생하는 만큼 모든 사고 가능성에 동일한 수준의 대책을 적용하기보다 인명 피해 가능성이 큰 사고 예방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형 싱크홀의 원인은 대부분 지하 공사인 만큼 지하 공사 현장에 지질 전문가를 배치하고 지하 지질 조사를 실시하는 등 공사 안전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유의미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지하 공사 관리·감독 강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하 터널 공사를 하다 보면 현장 상황에 따라 공사 계획이 계속 바뀌는데 그때마다 안전 설계를 제대로 지키는지 전문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게 (수도관 관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노후 수도관 문제는 책임 주체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며 “싱크홀 원인을 수도관 탓으로 돌리는 건 지하 공사 관리가 부실했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22일에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길이 1m가량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2번 출구 인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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