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 0명’으로 조정하려면 의대생들이 이달 말까지 학교에 복귀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뒤 의료계가 극명하게 둘로 갈렸다. 17일 서울대 의대 교수 4명이 탕핑(躺平·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만 하는 제자들을 꾸짖는 성명을 내놓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교수라 불릴 자격도 없는 몇몇 분들”이라며 해당 교수들을 직격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성명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지금의 교수들은 주당 140∼150시간씩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타이르는 건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해 온 전공의들에겐 노동력 착취를 정당화하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다른 직역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정맥 주사 잡기 등을 응급구조사, 간호사에게 배우지 않았느냐”는 고백은 젊은 의사들의 반발만 불렀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현재의 투쟁 방식은 정의롭지 않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 성명에 공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명에 있다. “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라는 질문이다.
국민은 정부나 의사 중 한쪽이 백기 투항하는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한 발씩 양보해 지속 가능한 의료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게 의료공백 1년을 견뎌낸 국민의 요구다. 그러나 정부가 7일 의대생 복귀를 조건으로 “내년도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하자 의료계에선 “1500명 감원하거나 아예 뽑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필수의료 패키지’는 유불리를 따져 미래 수익이 줄어들 만한 내용은 ‘독소조항’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의료계 스스로 ‘내 밥그릇만 챙기겠다’고 선언하는 자충수다.
의료계 집안 싸움을 가장 흐뭇하게 지켜보는 곳은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라는 말이 나온다. 이대로 의대생 복귀가 무산되면 ‘의대 2000명 증원’ 카드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시간도 의료계 편이 아니다. 의대 증원 이슈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상당 기간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여야 모두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고, 야당은 지방 의대 신설까지 주장한다. ‘2000명 증원’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의료계가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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