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억 혈세 지원 받으며 파업…서울 버스 준공영제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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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3월 29일 14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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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명박 시장 도입한 준공영제 20년째
초기 효과 있었던 준공영제, 갈수록 문제 노출
땅 짚고 헤엄 치는 버스 회사들, 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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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일어난 서울시 시내버스 파업이 11시간 만에 종료된 가운데, 2004년부터 20년 간 이어져 온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시선이 나온다.

서울시민 혈세로 버스 회사에 주는 보조금 규모는 9000억원 선까지 급증했지만, 사측과 노조 모두 공적 책임보다는 사익에 집중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서울 버스 파업은 지난 28일 하루 만에 끝났다. 앞서 27일 오후 2시30분부터 당일 오전 2시까지 진행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 회의에서 시내버스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오전 4시부터 오후 3시까지 11시간 동안 서울 시내버스 7200여대가 멈췄다.

파업을 시작한 날이 고등학교 3월 모의고사 당일로 학생들을 중심으로 불편이 가중됐고, 이에 버스 노사를 향한 여론도 악화됐다. 결국 노사는 11시간여 만에 합의를 했고 퇴근길에는 버스가 정상 운행하게 됐다.

버스 노사는 임금 인상률 4.48%에 명절 수당 65만원 신설로 합의에 도달했다. 명절 수당을 포함하면 임금 인상률은 5.6% 수준이다. 이로써 서울시가 버스 회사들에 지급해야 할 보조금은 600억여원 더 늘었다.

서울시가 버스 회사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2004년부터 준공영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 7월 버스 운행 체계를 개편해 운행 특성에 따라 버스 노선을 간선·지선·순환·광역·마을버스 등 5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버스와 지하철 간 통합 환승 할인제와 함께 준공영제를 시행했다.

‘준공영제’는 버스 운영을 민간 자율에 맡기는 민영제와 버스 회사를 지방자치단체 또는 산하 공기업이 경영하는 공영제의 장점을 결합한 방식이다.

이 전 시장이 준공영제를 도입한 것은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운행이 파행을 빚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버스 회사들은 사업자 능력에 따른 서비스 수준 편차가 컸다. 일부 업체는 자본 잠식 상태로 기사 임금이 체불됐고 기사들이 파업을 하면 버스 운행이 한 달 이상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민 불편이 가중됐다.

그러자 이 전 시장은 준공영제 도입을 통해 민간 버스 회사가 담당하고 있던 운영 권한을 확보하고 운행 계획과 노선 입찰, 수익금 공동 관리까지 주도하고자 했다.
논란 끝에 도입된 준공영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무리한 운행이 사라져 시내버스가 제 시각에 다니게 됐다. 기사 처우도 개선돼 이용객 대상 서비스 질이 향상됐다.

버스 사고도 줄었다. 준공영제 도입 직후 버스 사고 건수는 17.66%, 사망자 포함 사상자 수는 10.66%, 버스 사고율은 약 18% 감소했다는 집계가 나올 정도였다.

이 전 시장이 도입한 준공영제는 환승 요금 체계, 버스 중앙 차로 등과 함께 대중교통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돼 이후 부산과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등 국내 주요 대도시로 확산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준공영제에 관해 “버스전용차로제처럼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결국 성공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좋은 정책”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서울시의 버스 준공영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준공영제는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버스 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서울시는 회사들이 낸 적자를 보전해 주는 것도 부족해 적정 이윤까지 보장해 줘야 했고, 이로 인해 회사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버스 회사 임원들이 과도한 임금을 받고 지나치게 많은 배당금을 챙긴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일부 회사는 보조금을 임원 보수로 전용한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아울러 기사 채용 시 금품수수 등 채용 비리 논란, 회계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 운송 수입금 관리 방식 등이 불거지며 서울 시내버스 회사들을 향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시가 버스 회사들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 역시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손익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된 버스 회사들이 노선 조정 등 권한을 내려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서울시의 기대는 빗나갔다.

2004년 준공영제 도입 당시 서울시는 버스 회사들의 운송 사업 면허와 경영권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서울시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상당수 회사들은 수입 증대를 이유로 서울시의 노선 조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기존 노선을 고집했다. 일부 노선은 차내 혼잡이 극심해진 반면, 일부 노선은 서비스 질이 떨어지거나 운행 일정을 준수하지 않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나아가 서울 버스 회사들은 지나치게 많은 차량을 보유하면서 이를 통해 적정 수준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챙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회사들은 예비 차량을 과도하게 두면서 감차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예비 차량 대수가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비 차량은 버스 보유 대수에 포함되고 서울시는 보유 대수를 근거로 보유비 명목의 돈을 준다.

나아가 회사들은 서울시의 감차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경전철 도입과 지하철 노선 확장 등으로 버스의 수송 분담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서울시는 회사들에 총 1000대 이상 감차를 요구하고 있지만, 버스 회사들은 사유 재산권 침해라며 거부하고 있다. 버스 기사들 역시 감차를 고용 불안으로 해석하며 반대하고 있다.

버스 회사들의 기득권화 역시 우려스럽다. 준공영제 협약 당시 기존 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한 탓에 제3의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워졌다. 20년 내내 서울 시내버스 업체 수는 64~66개로 유지되고 있다.

규모가 작고 영세한 업체들이 많아 생산성 제고와 비용 절감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업체 간 경쟁은 물론 인수 합병도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적자를 내면서도 서울시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땅 짚고 헤엄 치기’ 식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버스 회사들로 빠져나가는 서울시민 혈세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준공영제를 지속하는 이상 서울시가 예산으로 버스 회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자연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률로 인해 인건비는 상승하게 되고 유류비 역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버스 이용객 수가 줄어들면서 버스 회사로 가는 보조금은 더 늘어나고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버스 이용객 수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무임승차 증가로 보조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승객 감소는 직격탄이 됐다. 2019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각종 모임이 통제되고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시민들의 이동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서울 시내버스 승객은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 22.7%,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23% 감소했다. 이는 버스 회사 운송 수입 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서울시 보조금 증가를 뜻했다.

서울시 예산으로 버스 회사들에 지급되는 보조금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8915억원에 달했다. 2000억원 안팎을 유지하던 보조금 규모는 2018년 5402억원까지 늘었다가 2020년 1705억원으로 줄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승객 감소 속에 2021년 4561억원, 2022년 8114억원에 이어 지난해 8915억원까지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파업을 계기로 기사 임금이 추가 상승하면서 서울시 돈이 600억여원 더 투입되게 됐다.

버스 회사 보조금이 서울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늘어날 경우 이는 대중교통 서비스 수준 하락을 낳고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시내버스는 간·지선 1500원, 순환·차등 1400원, 광역 3000원, 심야 2500원, 마을버스 1200원으로 요금을 올렸는데 여기서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버스 준공영제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서울시가 준공영제를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중교통은 공공 서비스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일정한 노선과 운행 계획표를 갖고 다수 시민을 운송하는 수단이다. 대중교통은 승용차 이용을 억제해 시내 혼잡을 완화하는 한편 승용차가 없는 시민들이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목적지까지 통행할 수 있게 한다.

일반 시민이 낮은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복지 차원에서도 필요하고 권장돼야 하는 수단이다. 서울시에는 앞으로도 예산을 투입해 안정적인 버스 운행을 도모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 버스 준공영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버스 회사 간 인수 합병을 통해 버스 업계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구조조정을 통해 버스 보유 대수를 줄이고 임원 규모 등을 감소시키면 서울시가 지급하는 보조금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환(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통관리학과)은 ‘서울시내버스 준공영제 대형화 효과 연구-규모의 경제 측면’ 논문에서 “서울시의 경우 10~12개 업체, 4~5개 권역으로 대형화가 가능하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이 절감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상위 30% 업체가 하위 30% 업체 대형화 흡수 통합 시 연간 94.7억원의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며 “상위 30% 업체가 중위 40% 업체 흡수 시 39.2억원의 절감을, 중위 40% 업체가 하위 30% 업체를 흡수하면 연간 55.5억원의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시 산하 연구 기관은 수요응답형 버스(DRT)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홍상연 연구위원 등 서울연구원 미래공간연구본부 도시교통연구실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서울시 수요응답형 이동서비스(DRT) 도입 방안’ 보고서에서 DRT 도입 필요성을 제시했다.

‘DRT’(Demand Responsive Transportation)란 운행 계통과 운행 시간, 운행 횟수를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형태의 운수 사업을 뜻한다. 지금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버스가 아닌 이용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노선을 다니는 버스를 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은 향후 마을버스형 DRT를 비롯해 출퇴근 맞춤형 DRT, 심야 DRT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서울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자율 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DRT는 서울시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봤다.

다만 택시와 버스 등 기존 운수사업자들이 DRT 도입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자율 주행 기술이 버스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기사들의 대규모 실직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이들을 설득할 방안이 미리 마련돼야 한다. 서울연구원은 “DRT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우선 버스나 택시업계와의 상생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심야 콜버스 등 새롭게 등장한 교통 서비스들은 기존 운수사업자들과 갈등으로 실패했다”며 “DRT 또한 같은 수순을 밟을 우려가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기존 운수사업자들과 상생과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가령 버스 사업자들에게는 적자 노선을 DRT 운영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초기 도입 비용을 지원하고 택시의 경우에는 고급화와 안전한 합승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운수 사업 전반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DRT 한정 면허를 기존 운수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우선 발급함으로써 DRT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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