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지옥 열려” “합리적”…대법 ‘연장근로 판결’ 논란 확산

  • 뉴시스
  • 입력 2023년 12월 26일 1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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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연장근로, 주40시간 초과 기준으로 봐야"
양대노총 "이런 식이면 하루 21.5시간도 가능"
고용부 "노사정서 충실한 대안 마련되도록 할 것"

대법원이 연장근로 초과 여부를 판단할 때 1일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6일 논평을 내고 “근로기준법의 미비한 명문에만 집중해 법의 취지와 현실을 무시한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런 판단이면 일주일의 총 노동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이틀 연속 하루 최장 21.5시간을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도, 하루 15시간씩 3일을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며 “이번 판단으로 제조, 경비, 병원, 게임, IT 등 현장에 ‘크런치 모드’ 등 노동 지옥이 합법적으로 열려 노동자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결과적으로 사법부 최고심이 명문에만 집중하고 현실을 무시한 판단을 함으로써 노동자 건강권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물꼬를 터줬다”고 했다.

이어 “민주노총은 법의 취지를 살려 ‘일일 13시간 연장 노동의 상한’ 마련과 함께 ‘11시간 연속 휴식제’ 도입을 촉구한다”며 “여전히 OECD 3위의 장시간 노동 국가에서 탈피하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삶이 보장되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시작하자고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7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연장근로시간을 판단할 때는 ‘1주간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해 주당 총 52시간까지 근로를 할 수 있지만, 주 단위가 아닌 1일 8시간을 넘기는 것이 법 위반인지 여부를 두고 해석이 혼재돼왔다.

해당 사건 역시 하급심에서는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을 각각 계산한 뒤 이를 합산한 값이 1주에 12시간을 초과했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은 1일 8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1주간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했는지 여부를 봤다.

예를 들어 월~토요일 하루 10시간씩 일한 근로자의 초과근무는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집계하면 12시간이지만 1주 40시간으로 계산하면 20시간이다.

일각에서는 이 판결로 사법부가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 것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지난 25일 논평을 통해 “1일 8시간을 법정노동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동안 현장에 자리 잡은 연장근로시간 산정방식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시대착오적이며 쓸데없는 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1일 연장근로 상한제한과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식권 전면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그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졌다”며 “국회는 연장근로에 대한 현장의 혼란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입법 보완에 지금 즉시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현행 근로시간 법 체계는 물론 경직적 근로시간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심도 깊게 고민해 도출한 판결로 이해하며 존중한다”며 “정부는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또 “이번 판결은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로 판단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향후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 이번 판결 취지를 반영해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건강권이 조화를 이루는 충실한 대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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