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사칭 “구속수사하겠다”…41억원 뜯긴 의사

  • 뉴시스

검·경·금감원 등 '기관사칭형' 범죄 증가세
피해자 중 사회경험 적은 20대 이하가 절반
"모든 전화·문자는 보이스피싱 의심해야"


#. 지난달 충남에선 133명으로부터 200억원을 뜯어낸 보이스피싱 조직원 8명이 중국에서 붙잡혀 국내 송환됐다.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 중엔 41억원을 뜯긴 40대 현직 의사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라는 범인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범죄 자금세탁에 계좌가 연루됐다며 “정상자금인지 확인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수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들은 범인이 시키는 대로 예적금·보험·주식을 모두 해지하고 대출까지 받아 현금을 인출해 전달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범인은 자금이 거액이라 직접 전달받는 데 한계가 있으니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가상자산 지갑 주소로 코인을 보내라”고 시켰다. 피해자들은 범인의 지시대로 리플, 이더리움 등을 구매해 지정해준 가상자산 지갑으로 송금했다.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체 전화금융사기 범죄 발생건수는 7363건으로 전년 동기 1만707건 대비 31% 감소했다. 하지만 반대로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발생건수는 3787건에서 4515건으로 19%, 피해액은 812억원에서 931억원으로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는 범죄에 연루됐다며 구속수사 등을 언급, 공포심을 조성해 피해자 재산은 물론 주택담보 등 각종 대출까지 받게 해 속칭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돈을 가져간다고 경찰은 경고한다.

피해자는 고액의 대출이자까지 감당하다가 회복하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도 5억원 이상 기관사칭형 다액피해 사건이 9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 직구’ ‘모바일 청첩장’ ‘택배 반송’ 등 불특정 다수에게 미끼 문자를 보내는 게 이들 범행의 시작이다. 해외에서 결제가 이뤄졌다고 문자를 보내고, 피해자가 놀라 전화하면 금융기관 고객센터를 사칭해 ‘본인이 직접 취소해야 한다’며 인터넷주소(URL)를 알려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를 누르는 순간 어디에 전화를 하더라도 범인이 당겨 받는 악성 어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된다.

이후 범인들은 다시 수사기관을 사칭, ‘자금세탁 등 범죄에 연루됐다’며 계좌 확인을 위해 돈을 보내라는 식으로 협박을 한다. 악성 앱 때문에 이들이 거는 전화는 모두 검찰 등 기관 공식 번호로 표시된다. 특히 교묘하게 조작한 구속영장 청구서 등 공문서까지 활용하면서 다수 사람들이 형사절차 경험이 없어 깜빡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이 같은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 피해자는 20·30대가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월까지 기관사칭형 범죄 피해자 가운데 20대 이하가 3527명으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인 47.9%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사기관 경험은 물론 사회경험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청년층을 상대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절대 수사기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일단 전화를 끊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특히 자산 검사 등을 명목으로 현금·가상자산·문화상품권을 요구하면 100% 사기이니 전화를 끊어야 한다”며 “모든 전화나 문자는 일단 전화금융사기 가능성을 반드시, 언제나 염두에 둬야만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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