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셈 뺄셈도 어려워하는 ‘난산증’… “만 6, 7세가 치료 골든타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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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구별 못하고 연산능력 떨어져… 전체 학령기 아동의 3∼6% 추정
반복학습보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
난산증 4분의 3이 난독증 동반
구체적 예 들며 수 개념 알려줘야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아동발달센터 치료실에서 전지혜 언어치료사가 난산증과 난독증 등을 진단하는 평가 도구를 설명하고 있다. 난산증으로 진단된 아동들은 수 감각을키우는 수업 및 치료를 받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아동발달센터 치료실에서 전지혜 언어치료사가 난산증과 난독증 등을 진단하는 평가 도구를 설명하고 있다. 난산증으로 진단된 아동들은 수 감각을키우는 수업 및 치료를 받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30대 주부 정모 씨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섯 살 아들이 수(數)를 이해하는 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많다. 아들은 1부터 10까지는 셀 줄 알지만, 특정 숫자 다음에 오는 숫자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둘 중에 더 큰 숫자를 찾을 때도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다. 정 씨는 “숫자를 100까지 세고, 덧셈 뺄셈도 하는 또래 친구들을 볼 때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며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녀가 정 씨의 아들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난산증(難算症)’을 의심해볼 만하다. 난산증은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난독증처럼 수 개념 이해나 연산 능력이 떨어지는 일종의 학습장애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체 학령기 아동의 3∼6%가 난산증을 겪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8년 캐나다 퀸스대 연구진이 7∼13세 아동 2421명의 수학 성취도를 추적 관찰한 결과 112명(4.6%)이 난산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 사교육보다 정확한 진단이 우선

국내에서도 수학 교육 열기가 높아지면서 난산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수학 실력이 뒤처진다 싶으면 학원이나 방문교사 등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산증이 의심되는 아이들은 보통 학생들처럼 문제풀이 위주의 반복 학습을 시키기보다 전문 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17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화여대 아동발달센터를 찾아 난산증 아동의 진단 및 치료 과정을 들어봤다. 센터는 난산증을 비롯해 발달장애 아동의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을 하는 곳이다.

난산증 아동의 진단 평가는 연령과 수 개념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만 4세 이상 △초1 이상 △초3 이상의 3단계로 나뉜다.

1단계 진단에서는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부터 검사한다. ‘5, ○, 7’을 보고 빠진 숫자 ‘6’을 찾을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3과 8 중에서 더 큰 숫자가 무엇인지 묻는 ‘수량 변별’ 검사도 있다. 직선 위에 ‘1, 10, 20’을 표시해 두고 숫자 ‘5’가 어느 숫자 사이에 들어가는지 찾는 것도 아동의 수 감각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2단계에선 주로 연산 능력을 평가한다. 한 자릿수 덧셈부터 나눗셈까지 초등학교 교과 수준의 문항이 제시된다. 이 단계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수학 학습 능력을 오해하기 쉬운 단계이기도 하다. 가령 난산증을 겪는 아동은 ‘3+5=8’은 알지만 ‘5+3=8’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큰 숫자가 작은 숫자들의 합으로 이뤄진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익숙한 문항의 답만 외우기 때문이다.
○ 문해력 낮으면 난산증 가능성도 높아
3단계는 문장으로 구성된 문제가 제시된다. 대개 이런 유형이다. ‘교실에 37권의 책이 있는데, 학생들이 12권의 책을 빌려갔습니다. 교실에 남아 있는 책은 몇 권입니까.’

이 단계에서는 아동의 문해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수학의 개념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지문이 긴 문제가 출제되곤 하는데, 문해력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수학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위 문제에서 ‘남다’ ‘빌리다’ ‘권’의 개념을 모르면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학생들은 문제 안에서 숫자를 따로 떼어내 계산하는 것도 버거워한다.

이화여대 특수교육연구소 이은주 연구교수는 “난산증 아동의 4분의 3가량은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어 학습 능력이 수학 학습 능력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도 이런 문제를 실감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양화초 류지연 교사는 “색종이를 2장씩 나눠 가져가라고 했을 때 어쩔 줄 모르거나, 문장으로 된 수학 문제가 나오면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고 말했다.

난산증은 빨리 발견할수록 개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수 이해도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만 6, 7세를 치료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전지혜 이화여대 아동발달센터 언어치료사는 “숫자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책에 적힌 숫자로만 학습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등 구체적인 물건을 가져다 놓고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난산증#치료#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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